[기획시론 새 정부에 바란다] 下. 質 높은 국민통합 이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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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한 시대의 마감과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린다. 마감하는 시대가 지난 15년간 '민주화' 시대라면, 새롭게 열리는 시대는 민주화 이후의 시대 , 즉 '포스트 민주화' 시대다.

이 포스트 민주화 시대는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표현을 빌리면 '단순'(simple) 민주화를 넘어선'성찰적'(reflexive) 민주화 시대다. 독재냐 민주주의냐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사회의 다양성을 승인하면서도 연대의 가치를 중시하는 게 성찰적 민주화다.

*** 지역·계층간 갈등 전성시대

돌아보면 지난 대선에서는 우리 사회의 단순 민주화가 갖는 명암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민주적 절차가 공고화된 것이 명(明)을 이루었다면, 지역.계층.세대간 균열은 그 암(暗)을 이루었다. 이제 가족 안에서도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 따라 갈등 전선이 존재하니, 갈등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 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를 국정 목표의 하나로 내세운 것은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란 다양한 사회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결하여 '질높은' 국민통합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민통합을 성취하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지역갈등의 치유다. 지역주의가 구조화돼 온 것에는 정서적 이유 못지 않게 정치적.경제적 이익 또한 중요하다. 이에 대한 최우선의 방책은 물론 인사 탕평책이다.

특정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균형잡힌 인사정책을 펼칠 때 지역주의가 해소될 수 있는 단서가 주어진다. 현재까지 진행된 盧정부의 인사정책을 지켜보면 이 탕평의 정신은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인사에도 盧정부는 계속 이 원칙을 고수해야 할 것이다.

지역주의 못지 않게 국민통합을 저해해온 것은 중앙과 지방의 격차다. 지난 40년의 발전 전략이 갖는 주요한 특징의 하나는 수도권 집중형이라는 데 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이 집중형 발전전략은 생산 및 기회비용 등 각종 비용을 점차 증대시켜 왔으며, 국민 통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盧정부는 지난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포함해 다양한 분권화 전략을 제시한 바 있는데, 국민통합을 제고하기 위한 새로운 지방균형발전 정책은 적극 모색돼야 한다.

더불어 사회 불평등의 감소 또한 국민통합을 성취하기 위해 盧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는 점차 중산층이 줄고 상류층과 빈곤층이 느는 양극화가 진행돼 왔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중산층의 위기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산층의 위기는 IMF 경제 위기뿐만 아니라 지식정보 사회의 도래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청한다. 따라서 盧정부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세제 개혁을 통한 분배정책과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 사회 불평등 감소에 주력을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도 중요한 이슈다. 盧정부는 여성.저학력자.비정규직 노동자.장애인.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5대 차별 시정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는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런 적극적인 보호정책은 질높은 국민통합의 핵심 영역 가운데 하나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 부여된 가장 일차적인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 사회이건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없다. 성숙한 민주사회는 사회 갈등을 일방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민주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질높은 국민통합을 창출하는 사회다.

盧정부는 '대화와 타협'을 새로운 국정원리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을 토론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다. 대화와 타협의 원칙에 입각해 질높은 국민통합을 성취하는 것은 성찰적 민주화의 출발점이다. 盧정부가 성찰적 민주화 시대를 열 수 있는 초석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金皓起(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