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부터 내는 스톡옵션 … 벤처 '손톱 밑 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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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중반 이후 본격화된 세계적인 반(反)스톡옵션 규제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월가시위로 가속화됐다. 우리나라도 몇 차례 법 개정으로 스톡옵션을 옥죄어 왔다. 하지만 벤처업계는 이런 규제 때문에 인재를 끌어들이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스톡옵션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정부는 지난 5월 방대한 내용의 벤처대책을 발표했지만 스톡옵션 관련 요구는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 벤처기업 의지를 꺾는 스톡옵션의 ‘손톱 밑 가시’를 3회에 걸쳐 들여다봤다.

윤창희·손해용 기자

2000년대 중반 한 벤처기업에 합류한 박사출신 A씨. 그가 대기업 입사를 마다하고 벤처에 투신한 건 스톡옵션의 매력에 이끌려서였다. 이 회사 주식 10만 주를 싸게 살 수 있는 권리(스톡옵션)를 받은 것이다.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스톡옵션을 행사하라는 권유를 몇 차례 받았지만 할 수 없었다. 주식을 받을 때 내야 할 세금 때문이었다. 현행 세법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주식을 취득할 때 시가와 실제 행사가의 차액만큼을 일종의 보너스로 보고 근로소득세를 부과한다. A씨는 주당 차액인 1000원(평가액 1500원-액면가 500원)만큼인 1억원에 대해 최고 35%가량의 세금을 내야 했다. 그는 “당장 가진 돈도 없고 수천만원을 융통하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회사가 상장하지 못하면 세금만 내게 되는 셈이라 스톡옵션 행사를 미뤘다”고 말했다.

미실현 이익에 세금 물리는 꼴

 하지만 몇 년 뒤 이 회사가 상장한 뒤 그는 더 큰 세금 문제에 봉착했다. 이직하는 과정에서 스톡옵션을 행사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세청은 주당 차익 3500원(시가 4000원-500원)에 해당하는 총 3억5000만원에 대해 최고 38%의 소득세를 부과한 것이다. A씨는 “스톡옵션을 행사해 주식을 취득할 때는 세금을 물리지 말고 나중에 주식을 처분할 때 세금을 낼 수 있게 했다면 나같이 스톡옵션 행사를 못해 억울하게 세금이 늘어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톡옵션이 불합리한 규정 탓에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톡옵션 행사단계에서 세금을 부과해 스톡옵션 매력도를 떨어뜨리거나, 비용처리 규제 등으로 회사가 스톡옵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세무법인 광개토 박수용 세무사는 “현 제도는 미실현이익에 세금을 물리는 꼴”이라며 “세금 때문에 스톡옵션 행사를 미루다 이후 기업이 성공했을 경우 막대한 세금이 물려져 벤처인들의 사기를 꺾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벤처업계 대표는 “주식 처분 이후로 과세를 미뤄준다면 직원들이 회사 주식을 부담 없이 취득할 수(스톡옵션 행사) 있고, 이후 열심히 일해 올라간 기업가치는 현행법상 과세되지 않는 주식 양도차익이기 때문에 벤처인들의 기업 의지를 자극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5월 발표한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에서 벤처기업인들이 불만을 제기하던 일부 세제를 개선했다. 비상장 벤처기업이 인수합병(M&A)되는 과정에서 다른 회사 주식을 받을 때 물리던 양도소득세를 실제 주식 처분 시점으로 미뤄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대책에도 불구하고 스톡옵션 보유자들은 혜택을 보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상장 안 되면 휴지되는데 황당”

인터넷 업체 임원 B씨가 그런 경우다. 이 회사가 다른 비상장 정보기술(IT) 업체에 팔리게 됐는데, 인수회사 주식을 받기 위해서는 현재 회사에 대해 스톡옵션을 행사해 주식을 취득한 뒤 교환해야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이 나왔다. 그는 “인수회사 주식은 나중에 상장이 안 되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데도 무조건 세금부터 내라는 것은 황당하다”며 “(정부가 발표한) 세금납부 연기 혜택은 기존 주주들만 누릴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벤처업계의 원성이 이어지고 있지만 과세원칙을 앞세운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 스톡옵션으로 주식을 싸게 취득한다면 일종의 현물 보너스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즉시 과세가 옳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타인으로부터 집을 받거나 차를 받을 때 세금을 내듯이 현물 재산인 주식을 받을 때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라며 “벤처 육성도 중요하지만 과세 원칙을 해칠 순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스톡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빚을 내서 세금을 냈다가 최악의 경우 회사가 파산하면 세금만 내고 마는 경우도 생긴다”며 “스톡옵션을 차나 집과 같은 자산과 동일하게 보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5월 벤처대책 때도 스톡옵션 빠져

 증여세 부과도 벤처기업인들의 의지를 꺾는 대표적인 세제로 꼽힌다. 벤처기업이 M&A될 때 국세청은 장부가가 실제 가치보다 너무 낮다는 이유로 차액에 대해 최고 50%의 세율로 주주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해왔다. 세 부담이 과하다는 불만이 이어지자 정부는 5월 벤처대책 때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기에서도 스톡옵션은 제외됐다. 스톡옵션을 부여한 뒤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스톡옵션 행사가격을 낮춰 다시 부여하는 경우가 문제다. 이후 회사의 가치가 다시 오르면 엄청난 근로소득세가 부과되는데, 이 부분은 아무 변화가 없게 된 셈이다.

파프리카랩 창업자인 김동신 스마일패밀리 대표는 “기업가치가 하루에도 큰 폭으로 오르고 떨어지는 벤처업계에선 스톡옵션 가격 재조정을 엄청난 세금을 물리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갑래 연구원은 “탐욕자본주의에 따라 주로 서구 금융회사를 타깃으로 했던 세계적인 스톡옵션 규제 움직임이 우리나라에선 벤처 활성화를 막는 역기능을 가져오고 있다”며 “정부가 대대적으로 창조경제를 추진하는 지금이 스톡옵션 규제 완화를 논의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스톡옵션  회사의 주식을 일정 한도 내에서 액면가 또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직원에게 부여하는 것. 스톡옵션에는 세 단계가 적용된다. 첫 번째는 스톡옵션 권리를 받는 부여 단계다. 그 뒤 일정 기간이 지나 스톡옵션을 실제 주식으로 교환하는 게 2단계 스톡옵션 행사 다. 행사를 통해 교환한 주식을 처분하는 게 마지막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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