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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숙소 25년 문닫는 내자아파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내자아파트가 문을 닫는다. 서울 중앙청옆에 자리잡은 내자아파트는 해방후 25년동안 미군 군속·신문기자·관리등 미국인들의 숙소로 제공돼 숱한 애환을 간직해왔는데 건물 유지와 교통란 때문에 오는 30일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대지 1천평에 3층(일부는 4층), 건물(총건평 약 2천2백평)인 내자아파트는 현재 미8군문관 80여명의 숙소로 쓰여지고 있다.
이 건물을 관리하고 있는 미8군 용산기지사령관 루이서·거팅대령은 『상수도시설이 제대로 안돼 식수를 매일 운반해다 먹는 처지고 대부분 문관들의 일자리가 용산에 있는데 버스로 통근 시키기도 여간 불편치가 않다』고 문닫는 이유를 밝혔다. 거팅대령은 또한 『이 아파트가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아 지배인과 경비원을 쓰는데 만도 매년 3만5천∼4만5천달러가 든다』면서 『이 건물을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는 결정이 안됐으나 장병휴게소로 개조할 수 있으면 그 방법을 따르고 그렇지 못하면 한국정부에 반환하는 대신 시내에 있는 다른 건물로 대체해 달라든가, 새 건물을 용산에 짓겠다』고 말했다.
내자아파트는 일제때 만주 한국 일본의 석탄개발을 위해 썼던 미꾸니(삼국)석탄장사의 사원숙소로 지어진 것을 종전때 미국이 점령, 우리 정부의 귀속법인체로 넘겨졌는데 정부수립후 주한미군에 무상·무기한 대여케되어 지금까지 미군이 써왔다.
미국정부재산·접근금지의 표지가 담벽 여기저기에 나붙고 한국인의 출입이 금지된 이 아파트는 해방직후 미군정청 장교숙소, 여군숙소, 6·25땐 ECA숙소, 휴전회담땐 종군기자들의 취재본부로, 55∼58년까지는 운크라, 61년까지는 미대사관 경제조정장관실에서 사용해왔다. 그 때문에 북괴의 공격목표가 되어 50년6월27일 야크기의 기관총 세례를 받았고 51년엔 미그기의 폭격을 당했으나 이웃 건물에 맞아 정문과 굴뚝만 잃은채 무사했었다. 서울복판에 자리잡아 종군기자들이 베이스이기도 했다. 카이스·비치, 조지·맥아더, 짐·구카스등 명기자들이 지프에 흰기를 달고 반문점휴전회담 취재를 갔다 돌아오면 이곳서 피로를 풀었었다. 여자 군기자 마거리트·히긴즈의 『한국전쟁』이란 저술의 산실도 내자아파트였다.
고최병우기자가 오징어와 소주를 들고 찾아와 한국의 역사를 이들에게 토로하던 곳-. 52년 아이크의 방한때 해거티공보관과 수행기자 30명의 잠자리도 이곳이었고 53년9월 노금석씨가 미그 15기로 귀순, 첫 기자회견이 전파를 탄곳도 내자아파트. 그 때문에 전시에도 스팀이 들어왔고 텔리타이프가 10대나 있었다. 한·미 협정의 정신이나 무장·무기한 대여계약에도 불구하고 건물소유는 한국정부이기 때문에 소유주인 재무부엔 청산위원회까지 구성돼 있지만 미군이 내자아파트를 비우면 어떻게 할는지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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