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논리에 왜곡됐던 전기료, 40년 만에 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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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전기요금을 결정해 온 건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였다. 수급이나 원가보다 당시의 경제 정책 방향, 정치적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전기세(稅)’라는 말이 통용됐던 이유다. 21일 당정이 도입하기로 한 연료비 연동제도 그렇다. 이미 2011년 7월 시행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물가 오름세가 가팔라져 정치권 반발이 심해지면서 제동이 걸렸다. 결국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시행을 코앞에 두고 무기 연기를 선언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전기요금의 원가보상률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88.4%. 원가 1000원을 들여 전기를 생산, 884원만 받고 팔고 있다는 얘기다. 싼 가격 탓에 전기 수요는 급격히 늘며 최근 전력난의 한 원인이 됐다. 또 이렇게 생긴 손실은 결국 국가가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가격 왜곡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택용·산업용·농사용으로 구분되는 용도별 요금도 당시의 시대 상황과 정치적 힘겨루기에 따라 결정되기 일쑤였다.

 최근까지 혜택을 본 건 산업계다. 1970년대 이래 수출 증대가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면서 정부는 정책적으로 제조업체에 싼 전기를 공급했다. 가격 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산업계가 이렇게 ‘지원’받은 게 2001년 이후에만 14조원이 넘는다는 게 한국전력의 주장이다. 2011년 들어 이런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대기업용을 중심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이 빠르게 올랐다.

 하지만 주택용에는 산업용에는 없는 ‘시한폭탄’이 붙어 있다. 사용량에 따라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는 누진요금제다. 1974년 1차 오일쇼크 때 도입된 이후 2차 오일쇼크 때는 무려 12단계의 누진제가 실시되면서 최고 구간의 요금이 최저 구간의 19.7배에 달했다. 2004년부터는 6단계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해외에도 누진제를 활용하는 나라들이 있지만 통상 누진 단계는 3단계, 가격 차는 1.5배를 넘지 않는다. 일본은 3단계에 1.4배, 미국은 2단계에 1.1배다.

 이런 요금체계 탓에 자연히 가정용 소비는 위축됐고, 국내 산업은 전형적인 전력 다소비 구조로 고착됐다. 2011년 기준으로 산업용 전력소비량은 국민 1인당 4617㎾h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445㎾h)의 두 배에 가깝다. 반면 주택용 전력소비량은 1240㎾h로 평균(2448㎾h)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박광수 전력정책연구실장은 “누진제 완화와 연료비 연동제 도입은 그간 왜곡됐던 전기요금 구조를 교정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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