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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해방에서 환국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당시 동경에 있는 연합군최고사령부는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맥아더」원수는 말할 것도 없고 전막료가 대체로 영친왕에 대해서는 상당히 호의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영친왕자신의 덕망과 식견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보다도 누구든지 탁월한 군사지식을 가진 사람이 한국전쟁에는 필요했기 때문에 영친왕에 대해서도 더 한층 깊은 관심과 흥미를 가졌었는지도 모른다.
「맥아더」원수의 선임부관「하프」대령 같은 이는 항상 한국전쟁을 수행하는데는 선장 출신의 신성모국방장관 보다도「프린스·리」(이왕)같은 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하였는데 그것은 한국군대의 지휘관은 거의 대개가 해방직후 미 군정청에서 설립한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의 출신이므로 나이로 젊었을 뿐더러 경험이 부족해서 사단정도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장교도 그리 많지 못한 형편이었다.
따라서 그때 떠도는 말로는 한국인으로서 적어도 사단이나 군단의 병력을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소위 용병작전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영친왕 이은씨와 홍사익 중장의 두 사람 밖에는 없는데 홍 중장은「필리핀」에서 포로수용소장으로 있었던 죄로 태평양전쟁이 끝나자마자 전범으로 몰려서 아깝게도 사형을 당했으므로 이제 와서는 영친왕 한 분이 남아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임시정부가 부산에 있을 때에는 영친왕이 국방장관에 취임하려고 곧 귀국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게 되었으며 영친왕이 육군대학에 다닐 때부터「프랑스」전사의 연구가로 특히 보-불 전쟁사의 권위인 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도 그럴 것이라고 자못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와 함께 경상도의 어느 절에서는 여승들이 부적을 만들어 가지고 영친왕의 수명 장수를 빌고 이 나라를 바로 잡자면 영친왕이 돌아와야 한다고 떠들어대었으며 일부 전주이씨와 사회명사들은 벌써 부산 피난 중에「이은 선생 환국 환영회」를 조직하고 『이은 선생을 과거의 영친왕으로서가 아니라 신생공화국의 한 시민으로서의 환영회롤 가지려는 것입니다. 이미 신문지상에 이은 선생의 애절한 심정이 보도된 바도 있읍니다만 그는 항상 고국이 그리운 나머지 덕수궁 안 함령전 앞에 깔린 바둑돌을 몇 개라도 보내달라고 비밀히 윤 대비께 전해와 이를 듣고 모두들 애절하게 여겼거니와 그는 고국산천이 그리워서 벅찬 가슴을 움켜쥐고 단복의 눈물을 홀렸던 것이니 이제 선생이 고국에 돌아와 여생을 그리운 조국에서 보내려고 함은 조금도 가식 없는 그분의 본래의 뜻이려니와 우리는 따뜻한 동정의 정리로써 그를 맞이하는 것이 진실로 당연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이은 선생은 이조 5백년의 끝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로 태어나서 조국역사의 가엾은 수난자입니다. 이조의 역사가 우리민족에게 무엇을 주고 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막론하고 대한제국말기 한일합병의 국치가 어찌 국왕만의 잘못이라고만 비난할 수가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알다시피 오적이니 칠적이니 하는 매국노들의 소행이었던 것입니다.
이 절치 부심한 망국의 희생자가 된 영친왕은 11세의 나이 어린 몸으로 일본으로 끌려가 조국과 겨레를 위하여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서 적중의 고독한 신세로 마치 물에 떨어진 기름방울과 같이 60평생을 죄인 아닌 죄인의 귀양살이를 하여온 것입니다…. 』라는 환영취지서를 각방면에 돌렸다.
그리하여 항상 정치적 혼란에 휩쓸리고 전쟁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일반민중들은 이 나라를 구하고 시국을 바로잡을 사람은 일본에 있는 영친왕밖에는 없다는 생각에서 와글와글 떠들었으니 사람이란 본래 멀리 떨어져 있어야 더 위대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워낙 사람에 굶주렸던 끝이라 영친왕, 영친왕하고 영친왕을 과대평가해서 무슨 구세주와 같이 생각하여 필요이상의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멀리 동경에 있는 영친왕은 조금도 모르는 일이고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자기자신은 그만 인생에 지쳐서 정치가가 될 생각도, 다시 군인생활을 할 생각도 없었건만 본국에서는 남의 속도 모르고 자꾸 떠들어대니 이런 일들이 결국 억울한 오해를 사게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좀더 일찌기 고국에 돌아오지를 못한 중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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