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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국내용 전동차는 싸구려 '불쏘시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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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 철도 차량 사업을 대표하는 로템은 최근 홍콩에 전동차를 납품하면서 애를 먹었다. 홍콩 발주처에서 요구한 내장재가 국내 전동차에 쓰는 '강화플라스틱(FRP)'이 아닌 '페놀계 허니컴'이었기 때문이다.

페놀계 허니컴은 쉽게 타는 FRP에 비해 불연성과 난연성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이 내장재를 구할 수 없어 해외에서 전량 수입해 전동차를 만들어야 했다.

국내의 같은 공장에서 만든 전동차지만 내수용이 수출용에 비해 안전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 등 선진국에 수출되는 전동차는 화재에 철저하게 대비가 돼 있지만 국내용은 그렇지 못하다. 전동차의 내부 설계도 내수용은 위험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힘들게 돼 있다.

반면 유럽 규격에 맞춘 수출용은 차량 간의 연결문이 아예 없다. 한 차량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다른 차량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통로를 넓게 제작해 승객들이 전동차 안의 전체 상황을 쉽게 볼 수 있게 돼 있다. 비상시 신속한 대처가 가능한 것이다.

수출용과 내수용 전동차는 내부에 쓰이는 재질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수출용은 바닥재는 물론 객차 연결부도 모두 불연재를 사용해 불이 나더라도 번지는 것을 막는다.

벽면 내장재에서도 수출용 전동차는 불연 소재 내장재를 사용하지만 내수용은 FRP 내장재를 사용한다. 따라서 불을 붙였을 경우 그을음만 묻어나는 수출용과 달리 국내 전동차용은 검은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녹아내린다.

전문가들은 내수용 전동차 의자에 방염 2급의 JIS Z2150 커버지와 난연성.자기소화성의 쿠션 패드(PU폼:폴리우레탄)를 사용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난연성이라고 하지만 불이 붙으면 그대로 타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업체가 유럽 규격에 맞춰 제작한 수출용은 좌석을 불이 붙지 않는 스테인리스로 만든다.

특히 내수용 전동차의 바닥재로 쓰이는 리놀륨과 갱웨이다이어프레임은 염화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화재 발생시 많은 양의 유독가스를 내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PE 폼(폴리에틸렌)으로 제작된 단열재 역시 많은 유독가스를 배출한다.

수출용과 내수용 전동차가 이같이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수출용은 선진국의 까다로운 기준에 따라 돈을 많이 들여서라도 안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동차 납품 단가의 경우 내수용은 한량에 8억~11억원이다. 하지만 해외에 수출하는 제품은 내수용의 두배 수준인 16억~20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선진국은 비용보다 안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에 전동차를 발주하는 유럽.미국.홍콩 등 선진국의 경우 이 같은 참사 가능성을 우려, 내장재에 모두 불연재나 최상등급의 난연재를 쓰도록 규정돼 있다.

내수용의 안전도가 떨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 전동차의 제작 기준이 너무 추상적이고 허술하다는 것이다. 현행 국내 철도 안전규정에는 전동차 내 내장재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유독가스 관련 부분이 명시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철도 차량 전문가들은 해외용 전동차에 무조건 우수한 기준이 적용됐다기보다 선진국은 국내와 달리 다양하고 구체적이고 계량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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