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꿈 산 뒤 … 김형태 진짜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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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회 2연패를 노리던 이상희(21·호반건설)는 4라운드 마지막 홀(파5·541야드)에서 두 번째 샷을 그린 에지에 올려놓고도 어프로치 샷 실수로 승부를 내지 못했다. 올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의 시드를 잃고 국내 무대로 힘없이 돌아온 김형태(36·사진)는 지난 1년간의 끝없는 추락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자신을 응원하는 9개월 만삭의 부인(변희진씨)이 18번 홀 그린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선수는 국내 최고 권위의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놓고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처럼 으르렁거렸다.

 18일 충북 충주의 동촌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동촌 제56회 KPGA 선수권 J골프 시리즈 최종 4라운드. 1타 차 공동선두로 출발한 김형태와 공동 3위로 추격전을 펼친 이상희는 나란히 최종 합계 17언더파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첫 번째 홀인 18번 홀. 두 선수의 티샷과 2온을 노린 두 번째 샷, 그리고 그린 주변에서의 어프로치 샷은 명품이었다. 김형태는 1.8m, 이상희는 1.6m 거리의 버디 퍼팅을 남겨놓았다. 약간 내리막 라인인 김형태의 퍼팅이 홀 가운데로 멋지게 빨려 들어갔다. 이상희의 퍼팅은 종이 한 장 차이로 홀 오른쪽으로 벗어나 버렸다. 숨막혔던 73홀의 승부는 김형태의 승리로 끝이 났다. 통산 5승째. 우승상금 1억원.

 김형태는 만삭의 몸으로 자신을 기다리던 부인에게 달려가 3년5개월여 만에 따낸 우승 트로피를 번쩍 안겼다. 김형태는 2006년 생애 첫 우승을 한 뒤 소감을 얘기하면서 지금의 부인에게 공개 청혼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우승 후 “그동안 아이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9월 말 태어날 첫 아기와 아내는 내 인생 최고의 복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늘 아침 장모님께서 ‘자네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집으로 오는 꿈을 꿨다’고 하셔서 그 꿈을 샀다. 지금까지 세 번이나 장모님께 꿈을 샀는데 그때마다 우승했다”고 했다.

 최근 2년간 김형태의 골프는 최악이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자부심이 컸던 그는 JGTO 시드를 잃어 국내 무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드라이브 샷 거리가 줄어들고 샷이 망가지면서 2001년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난조를 보였다. 김형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드라이브 샷 구질을 드로로 바꾸고 클럽과 캐디까지 스윙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교체했다”고 말했다.

충주=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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