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금요일 … 이집트 내전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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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 람세스 광장에서 군인과 경찰에 맞서 시위를 벌이다 부상당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차량에 실려 후송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이집트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분열로 빠져들고 있다. 16일 이집트 전역에서는 지난달 3일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군·경찰이 무력 충돌했다. 무르시를 지지하는 무슬림형제단은 이날 군사정부에 대항하는 ‘분노의 행진’을 벌였고, 군경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무슬림형제단이 시위 집결지로 삼은 카이로 도심 람세스 광장에는 수만 명이 모여 군사정권 퇴진을 촉구했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시위대는 광장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투석전을 벌였다. 군 헬기가 광장을 낮게 돌며 위협하자 시위자들은 자신의 신발을 높이 쳐들고 “꺼져라 반역자들아”라고 고함을 질렀다. 군경은 산탄총과 최루탄을 쏘며 대응했다. 앞서 군경은 광장 인근 건물에 저격수를 배치하고 장갑차를 증강했다. 이날 충돌로 람세스 광장에서 약 50명이 숨졌다고 이집트 군 관계자들이 밝혔다. 가슴에 총을 맞아 피투성이가 된 사람 등 수 명의 부상자가 트럭 뒤편에 실려 후송되는 장면이 목격됐다.

 현지 나일TV는 무장한 시위자가 카이로 도심 다리에서 군경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을 내보냈다. 카이로 외곽 검문소에서는 차량에 탄 사람이 총격을 가해 경찰 한 명이 숨졌다고 국영 통신사 MENA가 전했다.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와 지중해 도시 다미에타, 수에즈운하 중간 도시 이스마일리아, 라일강 삼각주 지역인 탄타 등에서 군경과 시위대의 충돌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카이로 시위에 참가한 사라 아흐메드(28)는 “언젠가 나는 죽을 것이다. 침대에서 죽는 것보다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는 게 낫다. 총은 나를 겁주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날 충돌은 전날 무슬림형제단이 성명을 통해 “박해에 직면해 우리의 투지는 더욱 높아졌다. 수백만이 모여 금요기도회 뒤 ‘분노의 행진’을 벌이자”고 촉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 14일 진압작전으로 638명이 숨지고 420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무슬림형제단은 이날 숨진 사람이 2000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군부는 군경을 위협하거나 국가시설에 손상을 가하는 자에게는 실탄을 써 방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제 군부는 원칙을 지키려는 척도 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양쪽이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표현했다. 시리아처럼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상당 기간 유혈 충돌이 불가피하며 양쪽이 정당성 획득을 위한 여론전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국영 언론들도 시위대가 먼저 공격해 진압이 불가피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무력 진압에 대한 항의로 자국 대사를 소환했으며, 덴마크는 이집트에 대한 원조 중단을 결정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5일 긴급 회의를 열고 폭력 사태 중단을 촉구했다. 유럽연합(EU)도 19일 고위급 외교관 회의를 열고 이집트 사태 대응을 논의할 계획이다. 국제사회의 발 빠른 대응은 이번 사태가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지하드연구센터는 15일 성명을 내고 “형제들이여, 더 심한 탄압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라며 보복을 독려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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