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로 부수고 무차별 총격 이집트군, 명백한 시민 대학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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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 이래 혼란이 격화돼온 이집트가 14일(현지시간) 최악의 유혈 사태를 맞았다. 이날 새벽 수도 카이로 나스르시티 라바 광장과 기자지역 카이로대 앞 나흐다 광장 등에서 벌어진 이집트군과 경찰의 시위대 무력 해산 작전으로 최소 525명(이집트 보건부 추산)이 사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일 매사추세츠주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에서 이집트 군부를 강력히 규탄하는 긴급 성명을 내고 “다음 달로 예정된 이집트와의 합동 정례 군사훈련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비상사태 즉각 해제도 촉구했다. 그러나 연 13억 달러에 이르는 군사원조 중단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서너 시간 동안에 직접 본 시체만 100구가 넘는다. 명백한 시민 대학살이다.”

 14일 전화기 너머 아흐메드 솔탄(23)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시위대의 외신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 있었나.

 “특수경찰이 불도저로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총을 쏘며 시위대가 모여 있는 바라알아다위야 쪽으로 진입한다는 문자를 받고 달려나갔다. 그 뒤로는 총에 맞은 시민들을 병원으로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찰은 다친 사람을 돕는 시민들에게도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

 솔탄과의 통화 뒤 지난달 시위 취재 때 전화번호를 받았던 다른 시위자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사라 카말(20)과 연결됐다. 카말은 아버지가 무슬림형제단 고위 간부인 여대생이다.

 -무사한가.

 “동료들이 여자는 사원에 있도록 해 다치지는 않았다. 사원으로 실려온 시신 중에서 머리와 가슴 등 모두 네 곳에 총상이 있는 것도 봤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나.

 “우리(무슬림형제단)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려는 것이다. ”

  군부 지지자와도 통화를 했다. 이집트 군 쿠데타의 명분이 된 반무르시 시위를 주도한 ‘타마로드’의 공동설립자 중 한 명인 모하메드 헤칼(27)은 유혈 사태에 당혹감을 표시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나.

 “우리는 이런 폭력적 상황을 원치 않았다. 군부에 성급한 진압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었다.”

 -군부 개입 찬성을 철회하나.

 “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 간 무르시 측근들과 무슬림형제단에도 책임이 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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