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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까지 베끼는 네이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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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세계축제연구소 유경숙(38) 소장은 지난달 말 인터넷 검색을 하다 자기 눈을 의심했다. 그가 쓴 책 내용이 고스란히 네이버에 있었던 것. “처음엔 비슷한 여행 정보이겠거니 했어요. 근데 찬찬히 살펴보니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 거예요.”

 공연기획자였던 유씨는 2007년 가방 하나 달랑 메고 해외 축제 탐구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지자체마다 지역 특성 살린 축제한다고 난리잖아요. 하지만 딱히 콘텐트도, 방향성도 없고. 그래서 외국은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싶었죠.”

 그는 특히 문화예술축제가 자리 잡은 유럽에 3년 이상 머물렀고, 몸으로 겪으며 직접 체득한 지식을 토대로 2011년 『유럽 축제 사전』(멘토로출판사)이란 책을 냈다. 101군데 유럽 문화축제 정보를 꼼꼼히 담았다. 국내에는 여태 소개된 적 없던, 해외 예술 축제 전문서적이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 내용은 여행정보를 담은 ‘네이버 라이프 윙버스’란 곳에 상당 부분 옮겨가 있었다. 101군데 축제 중 86군데의 정보가 축약 정리돼 있었고, 순서도 거의 일치했다. 표절 시비를 피하 려고 애쓴 흔적도 역력했다. 문장 순서를 교묘하게 재배치했고, ‘초승달 모양의 공연장’이란 문구를 ‘반달형 모양의 공연장’으로 바꾸는 식의 단어 교체도 빈번했다. 전형적인 짜깁기였다.

 그러다 유씨는 그만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자신이 잘못 명기했던 이탈리아 축제의 사무국 전화번호마저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오자를 못 잡아 무척 찜찜했는데, 이 실수가 베끼기의 명백한 증거가 되다니….”

 유씨는 즉각 네이버에 항의했다. 열흘간 미적거리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우린 여행사 하나투어와 계약하고, 그쪽이 제공한 정보를 그대로 실었을 뿐이다. 문제가 있다면 하나투어에 따져라.”

 허탈해진 유씨는 ‘혹시 딴 데도?’라며 더 알아봤다. 올해 5월 출간된 『2013 축제 총람』이란 책도 유씨의 책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출판사에 항의하니 “네이버에 있는 내용을 가져다 썼다. 그건 이미 다 오픈돼 있다는 얘기인데 그게 문제인가”라며 되레 반문했다. 유씨는 “지식정보를 축적해 수익을 내는 네이버가 정보를 가볍게 여기니 2차 저작권 침해마저 일어나는 것 아닌가. 네이버가 지식정보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곧 소송을 낼 예정이다.

 현재 네이버엔 유씨가 쓴 책과 연관된 해외 축제 정보는 모두 삭제돼 있는 상태다. 관련 사안을 문의하니 네이버 측은 “무단 사용을 한 게 맞는지 하나투어에 알아보겠다”고 답변했다.

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