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감정에 충실하니 상승 종목 보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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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가지고 내일의 주가를 예측할 순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실험이 국내에서 실시됐다. 빅 데이터 처리업체 다음소프트와 강형구 한양대 경영대 교수팀의 ‘소메(소셜메트릭) 펀드’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트위터에 올라온 한국어 글을 분석한 결과를 기반으로 실제 투자에 나섰다. 한국판 트위터 펀드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3000만원을 투자한 지난해엔 9.7%의 수익을 올렸다. 이에 자신을 얻어 투자금을 5000만원으로 늘려 올해 6월부터 운영 중인 펀드는 12일 현재 2.32%의 수익을 냈다. 모두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각각 6.1%, -2.48%)을 상회하는 성적이다.

트윗 글을 기쁨·미움 등 9가지로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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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험이 시작된 건 2011년이다. 다음소프트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블로그·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글을 아홉 가지 감정(기쁨·사랑·바람·싫음·미움·슬픔·두려움·분노·수치)으로 분류하고 이를 기반으로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가 소비되는 행태를 분석하는 빅 데이터 처리업체다. 분석 결과를 토대로 마케팅 방향 등을 컨설팅한다. 사람들의 감정이 제품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다 보니 ‘주가도 감정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국내 최초의 SNS 펀드 출범으로 이어졌다.

 펀드 운용의 핵심은 SNS에서 표출되는 사람들의 감정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이를 투자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투자(investment)가 합리적인 이성 못지않게 감성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은 심리학에서 많이 연구된 사안이다. 이에 따라 하나의 종목과 트위터상에 나타난 9개 감정의 빈도 간 상관관계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상관관계가 90% 이상인 것들만 골라낸다. 이 중에 감정 변화에 따른 변동률이 커 거래수수료를 빼더라도 수익이 나는 걸 다시 골라 매수 또는 매도에 나선다.

특정 종목과 상관관계 계산 후 매매

 예를 들어 사랑이란 감정 빈도를 조사해보면 주류업체 하이트진로 주가가 오르는 상관관계가 발견됐다. 이에 따라 사랑 빈도가 높아지는 신호가 오면 하이트진로 주식 매수에 나서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로 투자 시스템을 만들어 모의 투자를 해보니 적잖은 수익이 났다. 자신이 붙은 김경서 당시 대표가 지난해 자기 돈 3000만원을 내놓았고, 김 대표가 서울시 정보화기획단장으로 가면서 올해엔 반승욱 부사장이 5000만원을 출자했다. 총 10종목에 대해 500만원씩 투자하되, 펀드매니저의 주관을 배제하기 위해 매수·매도 명령에 따라 자동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렇다면 오늘 주가 등락엔 언제의 감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까. 소메펀드팀의 분석 결과 특정일의 주가는 그 전 이틀간의 SNS 감정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소메펀드팀은 최근 이틀간의 감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일 장 마감 30분 전에 주식을 사고파는 전략을 세웠다. 강형구 교수는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최신의 감정 데이터가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이를 매매에 바로 활용하기 위해선 고성능의 매매 프로그램이 필요해 최근 이틀간의 데이터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 기쁨·사랑 같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두려움·싫음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메펀드 팀은 한전기술이란 종목이 두려움과 99.8%의 상관관계를 가진 사실을 발견했다. 한전기술은 발전소 설계를 하는 한국전력의 자회사다. 반승욱 부사장은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이 늘면 한전기술 주가도 거의 유사하게 오르는 양상을 보였다”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회 전반에 두려움이 퍼지면 전기라는 공공서비스의 가치가 올라가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또 주가가 낮을수록, 거래가 적은 종목일수록 트위터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6월 후 수익률 2.32%, 코스피 -2.48%

 딱 하나, 대통령 선거 같은 빅 정치 이슈가 발생하면 사람들의 감정을 기반으로 한 SNS 투자의 효용성이 떨어졌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일(12월 19일) 전날까지의 소메펀드 수익률은 11.3%였으나, 대선을 기점으로 9% 수준으로 떨어졌다. 강형구 교수는 “대선 전에 정치적 목적으로 설정된 계정이 늘면서 여기서 생성된 데이터가 급증한 탓”이라며 “정치의 계절엔 감정 데이터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투자업계에선 빅데이터를 활용한 투자 기법 개발 열기가 뜨겁다. 코스콤은 최근 ‘감성분석지수’를 개발했다. 감성분석지수는 SNS 등에 언급된 단어 중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과 개별 종목 주가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만든 지수다. 우선 주가와 관련된 단어를 골라낸 뒤 이 단어와 호응을 이루는 동사(오르다, 내리다 등)를 5단계의 척도로 분류, 가중치를 부여해 주가와의 관련성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현재 코스콤 감성사전에 등록된 단어는 총 2500여 개로, 이들 단어와 특정 종목 주가 흐름과의 관계를 지수로 만들어 주가 예측에 활용하고 있다. 박영도 코스콤 자본시장 IT연구소 팀장은 “코스피 40종목과 코스닥 10종목, 코스피200 지수에 대한 감성분석지수를 만든 결과 개별 종목보다는 코스피200 지수에 대한 예측력이 높았다”며 “연말께 투자자들에게 지수를 공개하는 베타서비스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코스콤 측은 베타서비스를 거쳐 이를 사업화할 계획이다.

 현대증권에선 뉴스 데이터를 가지고 주가를 예측하는 지표를 개발해 내부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특정 종목이 언급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뉴스가 발생할 경우 해당 뉴스가 주가와 거래량 변화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는지를 분석해 지표로 만든 것이다. 현대증권 측은 “아직은 개발 초기 단계로 리서치센터 내에서 활용하고 있다. 정교화해 하반기부터는 내부 열람용 자료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려움 관련 단어 늘면 한전기술 주가 상승

 투자에 빅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은 외국에서도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영국에선 2011년 초 트위터 펀드가 출범한 바 있다. 트위터에 올라간 글을 6가지 감정으로 분류해 지표로 만든 뒤 투자에 활용하는 개념이다. 이 펀드엔 출범 직후 2500만 파운드(약 445억원)가 몰렸지만 펀드 운용사 더웬트캐피털마케츠는 한 달 뒤 펀드를 청산했다. 당시 더웬트캐피털 측은 “시장의 평균수익률보다 높은 수익을 올렸지만 트위터 지표를 운용에 직접 활용하기보다 투자자들에게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함유근 건국대 경영대 교수는 “최근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펀드매니저보다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그램 매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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