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벗어야 인기 ? 크레용팝·에이핑크의 역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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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크레용팝

올해 걸그룹들은 노출에 승부수를 던졌다. 씨스타19는 ‘하의실종’ 차림으로 투명한 테이블에 엉덩이를 문지르고(‘있다 없으니까’), 모그룹 씨스타는 물랑루즈를 연상시키는 쇼와 가슴 튕기기 안무(‘기브 잇 투 미’)를 선보였다. 애프터스쿨은 성인 클럽의 ‘봉춤’을 가져와 노래 제목(‘첫사랑’)과는 동떨어진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치마를 들춰 올리며 자발적 아이스케키를 하거나(달샤벳), 밑도 끝도 없이 카메라 앞에서 수영장에 뛰어드는 이벤트를 벌이는(‘걸스데이’) 등의 모습에선 뭘 하자는 건지 의문만 증폭된다.

 그런 와중에 혜성처럼 크레용팝이 등장했다. 전신에서 노출한 곳이라곤 눈·코·입뿐이다. 체육복 입고 헬멧까지 쓴 채 ‘두더쥐 게임’을 연상시키는 점프를 하며 ‘빠빠빠’를 부르더니 뒤늦게 음원 차트 1위를 찍곤 여전히 상위권에서 머무르는 중이다. 13일엔 소니뮤직과 글로벌 유통 계약도 맺었다. 크레용팝을 ‘제2의 싸이’로 전세계에 홍보한다는 것이다.

 소니뮤직 이세환 홍보차장은 “해외에선 똑같은 작곡가가 쓴 곡에 똑 같은 안무를 하는 한국의 섹시 컨셉트 걸그룹에 관심 없다. 색깔이 뚜렷해야 통할 수 있다”고 했다. 크레용팝 소속사 크롬엔터테인먼트 황현창 대표는 “ 노출도 없는데 남성팬들이 열광하는 건 우리로서도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성적이 좋았던 건 오히려 벗지 않은 걸그룹이다. 2집 ‘핑크 테이프’로 돌아온 에프엑스는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고 디지털 종합 1위(‘럼펌펌펌’)를 비롯해 수록곡 전곡을 50위권에 올렸다. 섹시 개념과 거리가 멀지만 완성도 높고 색깔이 뚜렷한 음악으로 음원·음반 모두 성과를 내고 있다. SES·핑클 등 초창기 소녀풍 걸그룹을 추구하는 에이핑크도 ‘노노노’로 음원 차트에서 선전했다.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은 “걸그룹이 섹시 프레임 안에 스스로 갇힌 건 아닌지 돌아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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