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달 만에 '펙토스코프' 세계 첫 개발 … 모두 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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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애 ㈜현주인테크 대표는 지난달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주인테크를 내시경 분야의 세계적 명품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부품 납품업체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자체 기술로 수출까지 바라보는 회사가 됐다. 수출의 포문을 연 제품은 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팀의 의뢰로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을 받아 만든 실시간 의료영상 전송 오목가슴 교정 수술용 내시경 ‘펙토스코프’. 오목가슴은 1000명당 한 명꼴로 발병하는 선천적 기형으로, 교정수술에 쓰이는 내시경은 폐와 심장 같은 주요 장기 위를 지나야 해 만들기가 매우 까다롭다. 이걸 국내 회사가, 그것도 세계 최초로 만든 것이다. 이 업체가 바로 내시경 전문기업 ㈜현주인테크고, 창업자가 송경애(51) 대표다.

 “올 11월에 에콰도르에서 학회가 열리는데, 그때 의료진이 이 기술을 소개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전까지 만들어달라고요. 보통 내시경 개발엔 2년 반이 걸리는데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은 10개월이었죠.”

 말 그대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밤샘 작업을 했다. 제품을 개발하는 한편으로 의료 품평회나 전시회에 틈틈이 참여해 문제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다음 품평회 땐 그걸 개선해 갔다. 평가원들이 “어떻게 저런 기업이 다 있느냐”고 혀를 내둘렀다니 말 다했다.

 독한 기업 뒤엔 독한 임직원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뒤엔 그만 한 리더십이 있다. 지난달 만난 송 대표가 그랬다. 질문은 ‘인간 송경애’로 시작했지만 대답은 늘 ‘내시경’으로 끝났다. 길을 가다 병원 간판이 보이면 ‘저기선 어떤 제품을 쓸까’부터 떠올린단다. 창업 이후 15년간 일본·독일 같은 의료 선진국과 경쟁하며 살아남은 이다운 모습이었다.

 “사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국내 내시경 시장은 해외 제품이 점령한 상태였죠. 내시경 한 대는 집 한 채 값, 수리비는 차 한 대 값이었어요. 국내산 제품은 유통비가 줄어드니 가격은 자연히 낮아질 거고요. 기술력만 갖춘다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내시경 부품 납품 및 수리업이었다. 그러면서 어떤 부품이 최신 기술을 접목한 것이고, 어떤 걸 병원에서 선호하는지 파악해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수리시장까지 점령한 외국 기업의 횡포에 국내 대형병원은 문턱조차 밟기 어려웠다. 방법은 오직 하나, 외국 제품보다 더 싸고 더 완벽한 수리법뿐이었다. 한문학을 전공한 송 대표가 7명의 연구진과 같이 밤을 새우며 금속·전자·의료화학 등 관련 기술을 익혀 직접 영업을 다녔다. 그런 그를 보고 작은 병원에서 수리를 맡기기 시작하면서 금세 입소문이 났다. 수입 의료기기업체 관계자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수리법을 알았느냐”며 놀랄 정도였다. 2009년엔 인도 현지 기업인 ‘바이오메디콘서비스’와 계약을 맺고 내시경 수리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수리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한 현주인테크는 현재 펙토스코프 외에도 동물용 내시경 등 3~4가지 제품을 더 만들어 특허 출원을 준비 중이다. 승인 절차가 끝나고 내년께 상용화되면 30억원 정도 하는 연매출이 50억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게 송 대표의 설명이다. 내시경 국산화가 현실화되면서 송 대표에겐 또 다른 꿈이 생겼다. 현주인테크를 내시경 분야의 명품 브랜드로 만들어 국내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는 것이다.

 “사실 대기업이 의료기기 사업에 진출하면서 걱정이 많아요.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이 들어오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한 번에 잊힐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글로벌 기업이랑도 싸워 이긴 우리이니 이번에도 지지 않을 겁니다.”

글=홍상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기업은행·중앙일보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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