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대와 대 서울|박태진<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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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랑스」의 고언에 <속 빈 통일수록 소리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다. 나는 요즈음 몇 달 동안 아침 저녁 신문을 펼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한다. 어쩌면 사는 주변이 시끄러울 정도로 부산스러운 것은 속이 빈 통을 두들겨 대는데서 오는가고 기우해 본다.
하기야 옛 서울은, 옛이라야 몇 해 전을 말하지만 그런대로 틀이 잡혀 있던 것이 날로 팽창하는 인구가 이틀을 넘쳐흘러 누에가 뽕잎을 마구 먹어 가듯이 서울 인구는 교외로 무질서하게 먹어 나갔다.
당국은 급기야 대 서울의 시 경계선을 크게 그었고 인구의 팽창을 충분히 받아들일 새로운 틀을 마련해 놓았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의 통으로 견주어 볼 때 요란스럽게 소리를 낸다면 너무 커서 속이 차지 않는다고도 하겠고 또는 그 속의 어느 부분에만 차 있기 때문에 이 통은 소리를 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은 남산·인왕·북악을 제외하면 녹지대를 여윈지 오래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다만 팽창하던 인구가 언제부턴가 그것을 잠식해 버렸었다. 남은 것은 고궁의 그것뿐인데 덕수궁의 경우는 그나마 도로 확장에 찌 들린 데다가 전시장이 또한 먹어 들어와 있다.
이제 서울의 옛 지대에 살던 봄이 와도 그것을 대번에 느낄 녹지대는 거의 없다. 서구 도시에 흔한 푸른 광장은 아예 자취를 찾을 길 없다. 특히 이 봄부터 가을까지는 일본의 「엑스포 70」의 관광객을 유치할 판인데 서울은 그들에게 무슨 모습을 보여 주려는가. 「유럽」의 도시를 찾을 때 나는 「런던」,「로마」,「파리」,「브뤼셀」은 물론 「로테르담」「바르셀로나」「코펜하겐」모두 그 특징을 보여 주었고 그 틀이 짜여 있었다.
하기야 서울은 새로운 틀을 또는 통을 짜는 도중에 있다. 좀 큼직하게 짜고 보니 속이 자연 비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요즘의 낱말인 강남은 요란스럽게 소리를 낸다. 서울의 이 빈 부분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문제인 모양이다. 가 본 분들은 알겠지만 「런던」의 「하이드·파크」와 「켄징턴·가든」은 두 공원이 이어진 것인데 이는 끝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말 크다.
허황할 정도이다. 어느 노부부가 이 공원「벤치」에서 햇볕을 즐기며 이런 큰 공원을 만들어준「빅토리아」여왕에게 감사하노라고 하였었다. 또한 거대한 공원으로「배타시·파크」가 있었다.
이는 순전히 어린이의 놀이터를 위한 것으로 그야말로 강남 (템즈)으로 강 기슭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쩐지 우리는 도시를 건물이나 가옥으로만 메우는 줄로만 아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정부의 관서가 옮긴다는 이야기도 났다. 그러나 이는 그릇 판단한 것이며 어느 나라의 수도에 가도 전통이 있는 나라면 중앙 관서가 홀홀이 옮기는 법도 없고 또한 「비즈니스」가 같은「뉴요크」의 「월스트리트」, 「도오꾜」의 두정, 「런던」의 「시티」, 「파리」의 「불스」구가 옮긴다는 예가 없다.
대 서울을 오히려 녹지대로 메우고 우리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바티칸」시가 백년이 걸린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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