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라 트라비아타' 사랑의 메신저는 동백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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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 사교계의 성매매 여성이었던 마리 뒤플레시스와의 씁쓸한 추억을 되살려 쓴 뒤마 피스의 자전적 소설을 각색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이 버려진 여자의 묘지에 한 송이 꽃도 뿌려지지 않으리.”라며 애절한 탄식의 노래를 부른다.

이 대사에 감동한 세계의 오페라 팬들은 오늘도 원작의 주인공인 마리 뒤플레시스의 묘비에 꽃다발을 바치기 위해 파리의 공동묘지를 찾는다니 비올레타의 대사는 잘못된 예언이 된 셈이다. 소프라노라면 누구나 한번쯤 맡고 싶어하는 비올레타 역. 마리아 칼라스가 비올레타 역을 맡았다가 은퇴한 후 37년간 비교 당하는 것을 두려워한 후배 소프라노들의 기피로 라 스칼라 극장에서 무대에 올리지 못했을 만큼 소프라노의 역할이 절대적인 라 트라비아타.

한국에서는 1948년 1월 명동의 옛 국립극장에서 최초로 공연된 이 오페라의 비올레타 역을 한국 오페라의 대모라 불리는 김자경 선생이 맡았었다. 이탈리아어 ‘라 트라비아타’는 ‘길 잃은 여인’ ‘길을 벗어난 여인’ 또는 ‘버려진 여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오페라를 ‘춘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원작인 뒤마 피스의 ‘동백꽃 부인’을 일본인들이 그들 방식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한자 ‘椿’은 참죽나무를 가리키는데 참죽나무는 멀구슬나무과로 차나무과에 속하는 동백나무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백희’라 하지 않고 ‘춘희’라 이름 붙인 경위는 알 수 없는데 ‘라 트라비아타’와 ‘춘희’는 다른 작품이 아니라 같은 오페라의 제목을 원어로 표기한 것과 일본식으로 번역한 차이일 뿐이다.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처럼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 ‘비올레타’라고 했다면 이 같은 혼돈은 없지 않았을까.

비운의 시작이 될 첫 만남이 끝날 무렵 알프레도에게 마음을 연 비올레타가 자신의 가슴에 꽂았던 꽃을 그에게 주면서 “이 꽃이 시들 때쯤 다시 만나자”고 말하자 알프레도는 곧바로 “그러면 내일 와도 되느냐?”고 묻고 그녀는 이를 승낙한다.

붉고 화려하다는 점에서는 장미와 비슷하지만 동백꽃이 사랑의 메신저로 채택된 것은 하룻밤이면 시들어버리는 짧은 생명력 때문이라는 점에서 동백꽃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하는 매개체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 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1964년에 발표됐지만 왜색풍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가 1980년대 후반에야 해금된 가수 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의 내용 또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동백꽃을 매개로 하고 있음은 시대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로 상통하는 상징성 때문이다. 동백꽃의 꽃말은 ‘기다림’ 또는 ‘애타는 사랑’이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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