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비만한 아이, 음식 조절이 힘든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7살 여자아이 시윤이의 엄마가 원망스러운 듯 아이를 쳐다보면서 진료실문을 들어선다. 아무리 달래고 욱박질러봐도 살이 안빠져 병원을 찾았다는 것이다. 너 때문에 괜한 고생을 한다는 푸념이 섞여 있었다. 소아비만 아동과 부모님들을 처음 면담할 때 흔히 보는 풍경이다. 어머니는 이해가 안되는 것도 모자라 아이에게 진심 실망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이도 살을 빼겠다고 이야기하였고 엄마가 신경써서 식단을 만들어주고 먹기 코칭도 꾸준히 해주는데 이상하리마치 살을 못 빼는 것은 분명 아이의 의지박약이라는 것이다. 어디선가 엄마 모르게 숨어먹고 있거나 매일 할당량을 정해준 줄넘기를 제대로 안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제기하였다. 가끔 음식앞에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입으로 가져가기 바쁜 시윤이의 모습을 보면 복장이 터진다며 진료실에서 아이에게 결정타를 날린다. “너는 도대체 살을 빼고 싶은거니? 아니니? 그냥 이대로 살고 싶은거지?” 시윤이 역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시윤이는 자기는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데 엄마가 정말 몰라준다며 울먹거렸다. 이미 고도비만에 대한 아이들의 잦은 놀림으로 상처받을대로 받은 시윤이에게 엄마의 질책은 또 하나의 날카로운 가시처럼 불편한 자극임에 틀림없다. 진료실의 작은 언쟁을 보면서 두 사람의 생각의 불일치가 집에서 음식을 사이에 두고 얼마나 치열한 신경전으로 전개될지 예상하는 것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머니도 비만이어서 조심스럽게 어머니에게 물어봤다. 살을 빼보신 적이 있냐고? 그것이 그렇게 쉬웠냐고? 나는 어머니께 면박준다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 농담처럼 슬쩍 이야기했지만 움찔하는 당황스러운 표정이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비만의 미끄러운 비탈길 이론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짐짓 무시하고 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편하게 정복가능하다는 비만의 안방 이론을 정작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아이에게만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는 제 집 안방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겁많고 나약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누누이 주장하듯 비만치료는 삶의 태도를 바꾸고 생활습관의 교정을 동반해야 뿌리치료가 가능하므로 그 치료로 오르는 길의 각도는 예의 가파르고 그 노력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다이어트 시도자들이 금연치료자들이 벌이는 무수한 끊기와 다시 피기의 지루한 전쟁처럼 다이어트와 요요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미국 오리건연구소 에릭 스타이스(Eric Stice) 박사는 이러한 현상을 ‘비만의 미끄러운 비탈길(The Slippery Slope to Obesity)’ 이론으로 설명한다. 비만의 미끄러운 비탈길 이론이란 비만인은 뇌의 보상회로가 약화돼 이를 보충하기 위해 더 자주 음식을 먹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로 인해 현실적으로 뇌의 보상회로를 강화할 학습이나 탐구 같은 정상적인 기회가 사라진다고 말한다.

게다가 과식을 반복하면 다시 과식할 위험을 증가시키는 신경회로의 변화마저 일어난다. 이 현상은 비만인과 마약중독자의 뇌의 유사성을 증명한 연구에서 잘 설명된다. 2004년 뉴욕 Brookhaven 국립연구소 Wang 박사 연구팀은 PET 전산화 촬영을 이용하여 비만인과 마약 중독자의 대뇌 호르몬 전달 체계를 비교하였다. 두 군의 대뇌영상 모두 동일하게 선조체 도파민 D2 수용체 (striatal dopamine D2 receptor) 의 숫자가 감소하여 있어 물질이나 약물에 대한 강박적 탐닉을 조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특정 맛에 대한 탐닉이 강한 사람의 뇌의 보상회로는 점점 마약 중독자를 닮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비만으로 인해 뇌의 자극은 점점 줄어 뇌 크기가 줄고, 과식을 충동하는 뇌의 보상회로만 강화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만치료는 중독과 관성이란 강력한 두가지 장애를 극복해야 가능한 결코 쉽지않은 난제이다. 더군다나 그 노력의 주체가 이제 막 자율성을 배우고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소아인 바에야 그 어려움은 말할 나위없다.

소아비만 아동이 살을 뺄때는 매우 강력한 추동력이 필요하다. 뒤에서 밀어주면 그 힘은 더 배가된다. 가장 든든한 지원은 끊임없는 격려와 칭찬, 그리고 아이에 대한 신뢰임을 잊지 말자.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칼럼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