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도 메우는 잡상|서울역∼염천교 80여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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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역에서 염천교에 이르는 2백m가량의 인도와 염천교에서 [슈퍼·마키트]로 가는 80m의 인도에는 2백여명의 잡상인들이 자리잡고 있어 행인들이 길을 제대로 다닐 수 없는 형편이다. 더욱이 비나 눈이 내린후에는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 한가운데 길이나 별로 다를 바 없다.
그 중에도 더욱 교통이 혼잡한 곳은 서울역 소하물계로 들어가는 길목과 서울청과물시장입구. 소하물계 입구에는 시내[버스]정류소까지 있어 기차타러가는 사람, 기차에서 내러가는 사람, [버스]승객에 잡상인들까지 합치면 폭이 4m 나짓한 인도는 빈틈이 없이 사람들로 꽉 메우고 만다.
가끔 야바우꾼이나 뺑뺑이 들리기가 자리 잡는 날이면 이들 주위에는 20∼30명씩 구경꾼들까지 몰려들어 행인들은 차 도로 다닐 수 밖에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취객 잡상인들이 길가에 세워진 담벽에다 마구 용변을 보는 바람에 사람들은 악취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고 지나다니고 있다.
이곳 잡상인들이 늘어놓고 있는 물건을 보면 가지각색이다. 수첩·만년필·반지·도장·사과·과자·빵등을 비롯, 번데기·직석[도너츠]·직석잡채·직석생선회에 병에 담은 막걸리까지 있다.
서울역 소하물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주로 7, 8명의 여인들이 떡·잡채·돼지고기에 막걸리까지 병에 넣어 팔고 있고 청과물시장에서 [슈퍼·마키트]로 꼬부라지는 길목에는 10여명의 여인들이 가까운 수산물시장에서 생선을 사다 팔고 있다.
서울시경기동대 남대문경찰서 역전파출소등은 여러해를 두고 이들을 단속해 왔지만 상인들은 단속망을 피해 또는 변과 금을 물고 나와서는 그대로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하도 오랫동안 경찰의 단속을 받아오다 보니 단속 나와도 별로 겁내는 기색도 없다.
단속반이 나왔을 때는 어디론지 사라졌다가 5분도 못돼 다시 제자리로 몰려든다.
응암동에 살며 이곳에서 돼지고기를 데워 팔고 있는 김모씨(여·35)는『올들어 여러번 단속에 걸려 모두 3만원의 벌금을 냈지만 학교다니는 5명의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하루 7, 8백원 벌이하려고 나오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어느 단속경찰관은 단속에 걸려드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같이 딱한 사람들이거나 12살 안팎의 꼬마들이기 때문에『즉심에 넘기지 못할 때도 있다』고 단속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경찰집계에 의하면 올들어 이곳에서 경찰단속에 걸려든 잡상인들은 3백15건인데 즉심에 넘어간 것은 2백79건이고 36명은 훈방되었다.
서울의 응달, 영세잡상인들의 이 지대에 밝은 빛이 퍼질 날은 없을까? <현봉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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