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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한 프로젝트, 개인적인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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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설국열차’의 흥행이 순조롭다. 벌써 400만 명 넘게 관람했으니 관객수 600만 명쯤으로 알려진 국내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앞서 ‘괴물’(2006)로 1000만 명이 넘는 관객도 불러모았던 감독이다. 이만한 흥행쯤은 당연지사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의 대박감독이 오늘은 쪽박감독이 되곤 하는 게 영화판이다. 게다가 이 영화 같은 이른바 ‘글로벌 프로젝트’의 흥행 성공이 드물었다는 점에서 더 눈에 띄는 결과다.

 ‘글로벌 프로젝트’란 말은 여러 해 전부터 영화계에 나돌았다. 배경에는 나름대로 절박한 논리가 있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영화 제작비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대규모 볼거리를 내세운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려면 어느 정도는 감당해야 할 터. 그래서 기획단계부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통할 영화를 만들어 판을 키우자는 말들이 나왔다. 실제로 외국 제작진·출연진이나 자본과 결합하는 여러 시도가 벌어졌다. 하지만 해외는 둘째치고 국내 흥행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낸 경우를 꼽기 힘들다. 이유야 제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덩달아 ‘글로벌 프로젝트’의 위험성도 널리 알려졌다.

 사실 영화란 상품은 미국영화를 제외하면 자국 이외의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유통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협업도 쉽진 않다. 언어도, 제작 방식도 다르다. 예컨대 한국에선 하루 10시간 넘는 연속 촬영도 흔하지만, 미국 등에선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설국열차’도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졌다. 제작비는 모두 한국에서 투자했으되, 외국 배우들이 한국 배우들과 함께 주요 배역을 맡았다. 체코에서 진행된 촬영에는 할리우드 스태프가 결합했다. 또 원작은 프랑스 만화다.

 그런데 ‘글로벌 프로젝트’로 불려온 이 영화를 두고 봉준호 감독이 하는 말은 좀 다르다.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수식어를 단 영화가 뭘 보여줘야 하는지를 고민한 적은 없다”(본지 8월 7일자 23면)는 말이다. “스토리에 다양한 인종이 등장해 배우의 국적이 다양해지고, 영어 대사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란 설명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설국열차’는 그가 ‘괴물’을 개봉하기 전 국내에 번역된 원작만화에 매료되면서 시작됐다. 원작의 기본 설정을 가져오되 인물과 사건을 여럿 새로 만들어낸 시나리오 역시 직접 썼다. 수많은 이가 참여한 이 영화를 만드는 데 그의 상상력이 기둥이 됐으리란 짐작이 가능하다. 그는 “당연한 얘기지만, 그저 『설국열차』라는 원작의 놀라운 컨셉트를 묘사하는 데 주력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글로벌 프로젝트’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물일 따름이다. 이 영화가 해외에서도 성과를 거둬 한국이 주도한 글로벌 프로젝트의 성공사례로 기록된다면 다시 한번 곱씹어 볼 말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