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다도해…「바사야스」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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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원주민인 젊은 부부의 보금자리라 할 오막살이집에서 하룻밤 쉬고는「마욘」화산으로 향했다. 북쪽 산기슭으로 해서 산 중턱에 있는「마욘」화산 관측소로 올라갔다. 소장이 한국사람이라고 반기면서 이 화산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더구나 나의 전문분야인 지리학에 관한 것이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와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그는 1968년 폭발된「마욘」화산의 사진을 기념으로 주면서 마치 일본장기에 떨어진 원자탄의 버섯구름 모양 같은 불기둥이 화산에서 뿜는 것도 장관이었지만 그것이「레가스피」제 해상에 비치는 모습은 이루말할 수 없이 아름다 왔다고 말해 주었다. 이 화산의 분화도「비너스」아닌 지신이 부리는 조화일까.
내가 직접보지 못했으니 실감이 날리 없지만 이 화산의 화구에서 6km반경에 이르는 지대는 영구 위험지대, 그리고 반경 8km까지를 추가 위험지구로 정한 것을 보더라도 분화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나라사람이 내성적이면서도 격정적 외향적인 성격을 지닌 까닭은 화산의 나라로서 폭발적인 분화를 닮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멕시코」사람이 그러하듯이….
「루손」섬 최남단에 있는「마트녹」에 가서 남쪽에 자리잡은「비사야스」제도를 종단할 계획으로 나룻배를 탔다. 그런데「필리핀」을 크게 나누면 북쪽의「루손」섬, 남쪽의「민다나오」섬, 그리고 이 두섬 사이에 있는 크고 작은 여러 섬들을 통틀어 말하는「비사야스」제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이 붙은 섬만해도 4백90여가 되니 그야말로「필리핀」의 다도해가 되는 셈이다.
이 섬들은 평야가 아니라 거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들 사이를 왕래하는 해상교통이 어떻다는 것을 살펴보긴 했으나 가 보아야 할 일이었다. 지금 이 나라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국도제1호선은 착공되어 시설하기 쉬운 곳은「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섬 지역이며 산간지에 큰 길을 마련하는 것도 그렇지만 다리를 놓는 것이 또한 어렵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부분적으로 밖에 되어 있지 않다. 이 공사는 미국의 원조밑에 일본의 기술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식명은「비미우정간선도로」라고 한다.
「루손」섬 남쪽 끝을 떠난 나룻배는 3시간만에 60리의 해협을 건너「사마르」섬의 북쪽「알렌」이란 곳에 닿았다. 배위에서 얻은 정보로는 대간선 도로인줄만 알았는데 막상 와 보니 뜻하지 않은 소로인데다 마침 우기여서 교통이 마비되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북부 사람들은 남부로 갈 때에는 이「알렌」에 와서는 선편으로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지역의 지도란 미래의 구상도 일 뿐이었다. 그 전에「아프리카」내륙여행때엔 내가 지도를 만들다 시피하며 탐험에 가까운 답사를 했지만 이곳도 그와 비슷한 곳인 모양이다. 이 섬사람들은 특별로 독선을 타고 가라고는 하지만 돈이 많이 드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바닷가의 어떤 오막살이집에 하루 신세를 지기로 하고 값 싼 선편을 톺아보며 이「사마르」섬을 톺아다녀 보았다. 이 섬의 동쪽바다에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필리핀」해구가 있기도 한데 이 섬은「코코」야자가 많았으며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원시림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다. 이 섬은 비가 많이 오며 태풍의 길로 되어 있어서 이 나라에서도 태풍의 피해가 가장 심하다는 것.
다음날 아침 선객이 열일곱명 되어「반카」(양쪽에 날개달린 발동선)를 빌어 타고「사마르」섬의「알렌」에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바닷물 속엔 산호초가 빤히 들여다 보이는가 하면 바닷가엔 야자나무가 우거졌고, 대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서 우리를 만들어 고기가 몰려들어 오게 한 연안어장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섬사람들은 통나무배를 타고 다니며 여자들은 볕이 따가운지「파나마」모자를 많이 쓰는 것은 이색적인 정경이었다.
바닷가에서 좀 들어간 마을에는 으례 성당이 우뚝 솟아 있고 원주민의 초라한 집들이 다소곳이 모여 있다. 마치 성당이 보실 펴 주는 듯 종교적인 색채가 짙어 보였다. 역시 이 나라는 어딜가나「가톨릭」의 힘이 큰 구실을 하는 듯. 그런데「루손」섬 남쪽 끝만 해도「마닐라」에 사는 종족과는 조금 다르더니, 이「사마르」섬엘 오니 종족은 물론 언어까지도 다소 달라 보였다. 이 나라에서는 말이 43가지나 쓰이는데 통일이 잘 안 되는 것은 섬들이 많을 뿐 아니라 큰 섬도 산악이 많고 험하여 교류가 어려우며 섬과 섬사이는 특히 고립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만에「사마르」섬 남쪽까지 내려와서는 다음엔「레이티」섬으로 상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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