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m 이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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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시의 생활 공간은 등고선 70m이하로 제한되었다. 앞으로는 그 이상의 고지대엔 건축을 할 수 없다. 또한 경사가 30도를 넘는 가파른 지대도 마찬가지이다. 이유는 상수도와 건물 안전 때문이다.
이런 조치는 뒤늦게 나마 경험에서 얻은 교훈인 것 같다. 당장 그 결함이 발견된 곳은 시민 「아파트」일 것이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그런 악조건을 무시하고 세워졌다.
연희동 산꼭대기에 껑충히 서 있는 「아파트」들, 인왕산 선바위 밑, 그 돌무더기 위에서 있는 「아파트」들, 현저동 산비탈의 「아파트」들….
여기가 견딜만한 생활 공간이라기엔 너무 무리가 많다. 우선 상수도가 원활할 리 없다. 또한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심스러운 것은 그 안전도이다.
건물은 적정한 안전도의 3배 위에서 세워지는 것이 설계의 상식이다. 과연 그 엉거주춤하고 날렵한 모습들이 얼마나 견고할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이 지대가 서민 대중을 위한 생활의 터전이고 보면 머리는 한층 무거워진다.
문제는 악조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시」한데에 있다. 적어도 도시 계획 행정이 상수도의 수압과 건물의 안전도를 고려하지 않고 세워졌다면 그것은 원시 사회의 사고나 다를 바 없다. 행정의 기준이 오로지 즉흥에만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루바두르」(troubadours·음유시인) 식의 행정은 현대의 이 엄청난 격랑을 헤쳐 갈 수 없다. 중세의 「민스트럴」(minstrel) 들은 흥얼흥얼 시를 읊조리며 봉건 영주들이 머무르는 제지를 편력했다. 이들은「피들」이라는 「바이얼린」비슷한 악기를 켜며 성을 순유한다. 11세기 말엽 「프랑스」의 「프로방스」지방에서 일어난 서정 시인의 한 파이다.
마치 그 음유시인 풍의 정치는 국민의 귀엔 우선 달고 좋을 것이다. 그러나 허무한 여운은 이들 시인의 공소한 노래를 쓸어가 버리고 말았다. 마찬가지이다. 한푼의 예산 책정 없이 강남의 토지 「러쉬」를 일으키는 그 구두 선이나, 결국 또 하나의 좌절을 겪고 말 부질없은 개발「붐」은 그 공허함을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가. 이미 등고선 상에 세워진 그 많은 건축물들은 그럼 행정 「미스」의 사생아가 되고 마는가. 「센티멘틀」한 음유시인 풍의 도시 계획을 이제 그만 「스톱」할 때가 되었다. 서울은 행정의 실험실도, 설계도의 「리트머스」색지도 결코 아니다. 건전한 행정은 건전한 행정가의 건전한 사고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평범한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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