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네비아」의 공포-「플로렌스」|천경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베니스」에서 하루를 더 묵으면서「스케치」라도 할까 했는데 그만 나는 밤차를 타고 「플로렌스」에 갔었다.
여자 홀로 가방을 들고 「호텔」을 찾아 방을 달라고 할 때마다 간이 서늘했다. 「르네상스」미술의 요람지인 「플로렌스」는 거리 자체가 박물관이요, 미술관이라는 느낌이었고 고색 짙은 냄새가 자욱했다.
어디로 가더라도 「택시」나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다닐 수 있어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플로렌스」에서 나는 자기가 여행자라는 걸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타임·머쉰」에서 먼 옛날 중세기의 세상에 떨어져 내린 듯한 묘한 착각 속에 묻혀 버렸다.
몇 걸음 걸어가면 「미켈란젤로」「라파엘」「보티첼리」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나면 나는 「아폴로」11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었다.
그와 같은 환각 세계에서 어느 화학도에게 길을 물었다. 감색 「도꾸리·샤쓰」, 감색 「코트」, 감색 「카」-. 감색 투성이를 감고 지니고 있는 이상한 화학도는 신비스럽게 보였다. 나는 화학도의 의복이 현대의 것이고 옛날 차림이 아닌 것이 되려 이상했다.
그러니까 나는 현대의 사람이고 젊은 화학도는 할아버지 또 할아버지 수백 배의 할아버지 시대의 사람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신비스러운 젊은이의 안내를 받아 몇 군데 사원을 돌고 그와「스파게티」를 먹을 약속을 했다.
그런데 「스파게티」를 먹으러 간다는 자동차는 호젓한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명했던 날씨는 별안간 짙은 안개에 덮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나는 환상에서 깨어났다. 뭔지 불안했고 불길한 생각이 들어 당황하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안개를 『저저……』하면서 가리켰다.
『네비아』(안개)-l
나는 돌아가자고 했지만 그는 들은둥 만둥 차를 몰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사기꾼도 많고 홀로 여행하는 여자를 「컬렉트」하는 사건도 있다던데….
나는 오늘날까지 그런대로 곱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하필이면 「이탈리아」의「플로렌스」에서 죽는구나 했다.
그랬더니, 죽음의 세계가 올 줄만 알았더니, 어느새 안개는 걷히고 동화 세계에 나오는 노란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 옆에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나는 성을 가리키면서 저게 뭐냐고 물었다. 『데아트로』(극장)-.
글·그림 =천경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