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철수 탄전에 이광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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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황지=변도은기자]삭막했던 탄광촌에 모처럼 생기가 돌고 있다. 산더미 같던 산원과 역두저탄장이 바닥이 나있고 그래도 모자라 대소탄광들은 벌써 한달째 선금을 받아 쥐고 무연탄을 캐고 있다. 3년만에 찾아온 연료파동 덕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탄광촌의 겉풍경에 불과하다. 탄광업자들은 쓸만한 광부이직 사태가 속출하고 전력·갱목·노임 등 생산비는 오르는데 탄값은 고정돼있기 때문에 아무 실속이 없는 경기라고 울상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의 탄광촌풍경을 겉과 속이 다른, 언제 꺼질지 모르는 호황이라고 비꼰다.
삼척탄전의 심장부인 이곳 황지·철암·문곡·장성 일대 20여개 대소탄광의 산원에는 현재 석탄이 없다.
혈암·호명·삼인·강원탄광은 완전히 바닥이 난지 오래고 역두저탄장에도 당장 실을 수 있는 것은 이 지역 탄광들이 이틀동안 생산할 수 있는 분량뿐이다. 무연탄을 캐내기 바쁘게 화차가 실어냈기 때문이다.

<정부선 생산독려만>
정부가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 연탄소동을 해소시키기 위해 전국에 9백40량, 이 지역에만 하루 2백량이 넘는 화차를 투입하는 바람에 미쳐 생산이 못 따르는 사태가 빚어졌으며 그래서 정부는 상공부직원을 파견하는 이외에 군장비까지 동원 일요일은 커녕 신정 연휴까지 전폐한 채 생산을 독려하고있다.
또 이 바람에 탄광업자들은 산더미 같던 저탄을 오래 전에 처분, 2, 3년래 누적돼 온 부채를 청산하고 지금은 한달치 선금을 받고서야 각지방 연탄업자들의 주문에 응하고있다.
그러나 긴장이 풀린 탓인지 1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벌써 화차배정량이 줄기 시작했으며 [시멘트]와 비료수송이 제철을 맞아 더 긴박해질 2월부터는 더욱 격감할 것으로 보고있다.
또 군장비와 상공부직원들도 2월 중순께면 철수할 전망이다.
거기다 더욱 걱정스러운 일은 광부들의 이직사태다. 68년에 통틀어 20%가 못되던 이직율이 작년에 와서 국영20%, 민영30%이상으로 급격히 높아졌는데 앞으로 해동과 함께 고속도로 등 각종 건설공사가 활발해지면 이직광부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남산 [터널] 공사현장책임자인 이택진기사를 비롯한 20명의 중진공사원이 작년에 석공을 떠난 「베테랑」들이다. 특히 이직율은 보다 나은 보수와 작업조건을 약속 받는 숙련 광부들간에 높아지고 있는 경향이다.

<떠나가는 숙련광부>
이와 같은 이직 사태의 여파는 심각하다.
첫째, 미숙련 광부라도 구해야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저하된다. 석공광부 이직율은 연10% 미만이던 것이 68년에 19·6%로 배이상 늘어났는데 이 때문에 65년이래 줄곧 하루 1t넘던 1인당평균생산량(OMS)이 68년에 0·9t으로 줄었으며 AID차관 9백20만불을 들인 장성수갱공사를 완공가동 시킨 작년에도 별 변동이 없었다.
둘째, 광산재해가 늘어난다. 문곡지구 함태탄광의 경우 68년에 2백30건이던 재해가 작년에 3백20건으로 40%가 늘어났는데 보안시설이 비교적 양호한 편인 장성탄광을 제외하고는 이 지역 민영탄광들이 모두 이와 비슷한 재해증가율에 고민하고 있다.
세째, 광부자체가 수적으로 모자란다. 국·민영 할 것 없이 매달 40명 이상 60명의 광부가 이직하기 때문에 이제는 모두 문호를 개방해 놓고 희망자만 있으면 수시 채용하고 있다. 응모자가 모집인원을 초과해서 쓸만한 사람을 고르던 일은 옛말이 돼 버렸다.

<탄가 현실화하라>
이에 따라 탄광측은 항상 광부들의 임금인상요구에 부닥치곤한다. 혈암이 1월1일을 기해 5%를 올렸고 광전·함태 등 다른 광산들이 2월부터, 장수탄광은 3월부터 역시 25%가량 올릴 거라는 소문인데 장성이 노임을 올리면 민영들은 더 큰 광부난에 허덕이게 될 것이라고 벌써부터 걱정이 대단하다.
탄광업계가 당면해 있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길은 고정배차제와 탄가현실화밖에 없다고 이곳 광업소 책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앞으로 연탄파동을 막는 길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정부는 석탄산업보호육성법에 의해 금년에 l8억원을 융자 또는 보조하겠다지만 탄광업자들은 아직은 기대를 걸만한 규모가 못된다고 냉담한 반응이다.

<제조업자만 재미봐>
지난해의 파동으로 재미를 본 것은 연탄제조업자뿐이다. 분탄값이 고정돼 있는 채 연탄값은 개당 20원 이상 25원으로 올라있는 사실이 그 증거라고 산탄업자들은 말하고있다.
또 서울의 연탄파동을 해소시키느라고 허겁지겁 서울지구로만 집중 수송했기 때문에 다른 지방도시는 지금도 연탄기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 이 기회에 고정배차제를 채택하여 비수요기에 충분한 무연탄을 전국 소비지에 수송 비축해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계속 증가될 수요전망에 비추어볼 때 작년수준과 같은 금년 9월말 소비지목표저탄 1백40만t은 그 자체가 또 한차례의 연료 파동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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