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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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 평의 땅에 대한 인간의 집념은 역사와 함께 연면한다. 사해를 다스리던 [알렌산더] 대왕(BC336년)이 오늘 겨우 한평의 땅속에 잠들고 있는 것은 그 애사의 시니컬한 장면이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바로 토지를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소망을 한 토막 민화속에 남겨놓고 있다. 가난한 농부 [파호므]의 이야기-. 그는 어느 날 조그만 보따리를 하나들고 여행을 떠났다. 토지를 나누어주는 나라를 찾아가는 것이다.
어느 허허한 벌판에 이르러 그는 토지를 파는 사람을 만난다.
1천[루블]을 지불하면 하루동안에 [파호므]가 걸을 수 있는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그 1천[루블]은 날아가 버린다는 조건이었다.
[파호므]는 필사의 노력으로 걷는다. 해가 지평선에 걸려있을 때 그는 출발점의 언덕에 나타난다.
그러나 [파호므]는 이미 기진맥진해 쓰러지고 만다. 결국 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터무니 없는 욕심을 꾸짖어 줄 생각이었다.
[파호므]는 현대에도 있다. 아니, 우리 가까이에서 요즘 탐욕스러운 [하포므]들은 너무도 정력적으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강남, 이른바 남서울의 저 벌판을 서성거리는 허황한 한국의 [파호므]들-.
[톨스토이]의 민화는 그러나 [파호므]에게 땅을 나누어 주지는 않는다. 땅을 가질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다.
남서울 개발의 목적은 이 좁디좁은 서울 바닥에서 복작거리는 사람들을 전원으로 교외로 안내하려는데 있다. 그렇다면 가난하고 순박한 시민들의 품에도 한 평의 땅이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제2의 서울이 토지의 투기장, 탐욕스러운 장사치들을 위한 황금의 기회가 되는 것이라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누구를 위한 정책이며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서울시의 한 고위정책가는 일요일 남서울의 상공을 산책하며 마치 바둑판의 포석을 내려다보듯 그 토지투기를 한층 부채질해 주었다. 시민들의 빗발치는 불평을 중계해주는 어느 방송에선 [토지를 환수하라]는 소리도 있었다.
도시계획이 땅장사에서 비롯해 땅장사로 끝날 수는 없다. 만일 남서울이 땅값이 지금의 서울에 맞먹는 것이라면, 그 정책은 아무 소용이 없다. [선계획·후이용]식의 [플래닝]은 다만 몇몇의 불로소득을 가져오고 말 뿐이다. 제2의 서울개발은 그 불로소득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과는 반대인 시민생활의 평균화·편리화에 있는 것이다. 시민부재의 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시민의 시장]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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