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동맹 변화 여지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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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토머스 허버드 주한미대사는 18일 "찰스 캠벨 주한 미8군사령관이 미 CBS방송과의 인터뷰 중 한국의 촛불시위 도중 성조기(星條旗)가 찢기고 불태워진 것을 말하면서 눈물을 보인 것은 미국민의 감정적 대응이 아니며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허버드 대사는 "만일 미국에서 태극기가 불태워졌다면 분명히 한국 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그같이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총동창회가 주최한 조찬강연에서 한 청중이 "미군사령관이 촛불시위 때 일부 과격 시위대의 성조기 방화를 언급하며 눈물을 보인 것이 미국 내 반한(反韓) 감정을 자극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촛불시위 당시 일부 집회 참석 군중의 성조기 방화 및 '미국인 식당 출입금지' 팻말 부착 등을 예로 들며 "솔직히 나도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실토했다.

허버드 대사는 그러나 "지난 수개월간의 상황과 그것이 우리들의 관계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이제는 냉정하게 대응할 시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은 우리들이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되돌아보고 서로가 파트너로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볼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미 CBS방송은 지난 9일 간판 프로그램인 '60분' 프로그램을 통해 '양키 고 홈(Yankee go home!)-한국의 반미 정서'라는 제목의 특집을 내보내면서 캠벨 사령관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내보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한편 허버드 대사는 18일 "한.미 양국 군이 현대화된 만큼 새로운 역할 분담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또 "한.미 동맹관계의 변화 여지는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미 간 정확한 병력구성 등이 어떻게 될지 양국이 함께 검토하게 될 것"이라며 "세계는 과거처럼 지상군 의존의 시대라기보다는 군대의 기동력에 많이 의존하는 시대로 변했다"고 향후 주한미군 재편 방향이 이같은 방향으로 추진될 것임을 시사했다.

허버드 대사는 그러나 "미국 정부 내 어느 누구도 주한미군의 철수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한국의 차기 정부도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원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정부의 희망에 따라 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 역할 변경=허버드 대사는 이날 한.미 동맹의 상징물인 주한미군의 역할이 바뀔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어떻게 변경될 지는 오는 3월 말 또는 4월 초부터 시작될 '미래 한.미 동맹의 발전 방향 모색을 위한 회의'에서 구체적인 윤곽이 나오겠지만 우선 단기적 측면에서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주한미군의 전력구조 변경이다.

미국은 동두천 일대에 주둔하면서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Trip wire) 역할을 하고 있는 미2사단의 규모를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럼즈펠드 장관의 고위 보좌관이 최근 언론과의 회견에서 "휴전선 방어책임은 한국군이 맡고 대신 미군은 해.공군 중심의 장거리 공격력 확보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미2사단의 규모 축소 및 한강 이남 배치를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 동맹의 변화=허버드 대사가 "한.미 동맹관계의 변화 여지는 분명히 있다"고 밝힌 것은 최근 일고 있는 한국 내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대선을 전후해 '균형있는 한.미 동맹'에 대한 목소리가 고조됐는데, 미측이 한국 내 이런 흐름을 수용해 발전적인 동맹관계를 재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한.미 동맹의 변화 키워드는 동북아지역 안보와 포괄적이고 수평적 관계의 모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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