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 고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에는 「커미션」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소개료를 규정한 법은 물론 아다.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마다 그 문제의 자초지종을 조사·해결하는 위원회를 만들어서 항구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수법이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거나 뜻밖의 사건이 튀겨져 나오면, 높은 사람들이 긴급회의를 열고는 대개는 「만전의 대책」이니 「최중단속」, 혹은 「일벌백계」운운하여 외양간을 고쳤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적어도 미식과는 마르다.
가령 「킹」목사하고 「보비·케네디」가 암살 당했을 때 무기 등록이니, 총기판매 규제니 하는 주먹구구 법이 나왔지만, 「존슨」대통령은 「바이올런스·커미션」을 만들어서 여기에 반대당의 전 대통령의 동생 「밀튼·아이젠하의」박사를 위원장으로 앉혔다. 위원에는 교육자·사회학자·성직자·법조인 등 각계 인사가 임명되었다.
그후 18개월이란 시일과 결필경은 거액의 조사연구비를 소비한 후 지난 주말에 그 보고서가 나왔다. 이 종류의 보고고에는 건의가 붙는 법인데 이번에는 미국의 폭력사태를 없애게 위해서는 월남군이 끝나는 대로 연 2백억불 정도를 국내문제 해결에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모두 약 백가지에 이르는 건의를 했다고 하지만 우리 상식으론 안타까움 정도로 우원한 수법이다. 그러나 우리 식의 과감한 응급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냉정하게 문제의 핵심을 파헤쳐서, 긴 안목으로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대 국민다운 데가 있다.
이번 「밀라이」감전만 해도 그렇다. 「닉슨」대통령은 그 사건의 진상을 소상하게 세상에 알리겠다고 약속하고, 현재로서는 관계정부기관의 조사와 조치에 맡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흡족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시빌리언·커미션」을 구성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영국의 민주주의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성에게는 복종을 요구할 것이지 알릴 필요가 없다는 공부자의 생각과는 다르다. 통치를 위임 받고 나라 일을 처리하는 행정부나 정부기관보다는 민간인의 역량과 지혜를 우선시키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정부기관의 말보다는 민간전문가들의 말과 견해가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