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의 소리」최인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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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조선총독부의 유령방송인 『총독의 소리』방속국이 첫 전파를 발사한것은 67년8월(신동아)이었죠.
60년대의 역작으로 꼽힌 소설 『총독의 소리』의 작가 최인훈씨(34)는 『총독의 소리』를 시종「방송」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6·8선거후유증이 한창일때였읍니다. 그 혼란속에서 문득 이런 소리가 들려 왔읍니다. 『독립, 독립하더니 겨우 이따위냐』는 .바로 총독의 소리였읍니다. 그때 부랴부랴 『총독의 소리』방송국을 만든거죠. 방송시설에 대해 투자는 많이 한 셈이지만 당시엔 단한번 방송으로 문을 닫으려 했지요.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대로 버리기엔 시설이 아까운 것 같았어요. 내친김에 시설수명이 다할때까지 방송을 계속하자 마음먹고….
그래서 두번째로 「방송」된 『총독의 소리』는 68년4월 (월간중앙) .총독은 두번째 방송을 통해 1·21사태와 「푸에블로」호 입국사건에 대해 특별담화를 발표했던 것이다. 이어 69년3월(창작과비평)에는 3회가 방송되고 69년6월(월간중앙)에는 『총독의소리』와 상대되는 『주석의소리』가 설치되어 첫 방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형식면에서 보자면 특이하달것도 없는 것이지요. 구조상 1인칭 독백체인데 이러한형식은 얼마든지 있었지 않았읍니까. 다만 우리가 처해있는 최대의상황, 즉 남북분단이란 상황과 그 상황속의 남북현실을 비판하려니 가공인물이 필요했던 것이고 .
59년 자유문학에서 『「그래이」구락부전말기』로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최씨는 그보다 1년후에 발표한 장편 『광장』으로 두각을 받기 시작했고 그래서 최씨에게 『광장』이 주는 의미는 적지않은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총독의 소리』도 『광장』으로부터 기본적 「모티브」를 따고 「테마」만을 변조시킨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횟수를 거듭할수록 보람을 느껴요. 사회서 밥을 얻어 먹고있는데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런것이 아니겠어요.
작가 혹은 작품을 50년대다 60년대다해서 억지로 특징을 짓는데대해 최씨는 꽤 비판적이다. 50년대가 사회적인 측면을 파고든데대해 60년대가 개인적 측면을 강조하는데 다소차이가 있다고 본다는 최씨는 세대별로 특징을 만든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다만 서로가 서로속에 서로를 가지고 있다는 의식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까지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의 수준과 꽤 거리가 있다고 봐야겠지요. 신문학 60년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우리작가가 처해온 사회적제약을 생각할때 당연한 것이겠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시민생활의 관습속에서 지적 자유의 풍토를 전통으로 수립하는 일일 것입니다.
작가생활 10년동안 장편3, 중편2, 단편30여편을 발표한 최씨는 새작품에 대한 기대를 최인훈 정석에서 떠난 어떤 다른 것에서 찾아보겠다고.
-이제 고작10년인대 이따금 『소설이란 무엇인가』하는 회의에 빠지고 그때마다 고통스러워요. <정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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