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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휩쓰는|오끼나와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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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조동오특파원]「오끼나와」반환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17일좌등일본수상은 그의방미를 저지하려는「데모가 절정에 달한가운데 미국으로 떠났다. 19일(한국시간20일) 부터3일간 백악관에서「닉슨」대통령과「오끼나와결판」을내자는것이지만 돌이켜보면 일본으로선 길고 또 긴노정이었다. 1945년4월, 격전중「오끼나와」본도를장악한 미태평양사령관이 포고제1호로『미점령군이「오끼나와」의유일한 시정권자임』을 선언하면서부터 자그마치 4분의1세기. 이제 좌등수상은 그의 정치적생명을 걸고 이「세기의흥정」을 치러 넘기려는것이다. 일본에 사실상의 종전을 가져온다고도 할수있는 이필생의 과업을 걸머진 좌등수상은 자기나라의 수도 동경도 에서 우전공항에 이르는 공도를 애용차를 이용하지못하고「헬리콥터」로 날아가야했다. 지상엔 좌익도미저지세력이 경찰기동대와 맞서「좌등방미」에 험한 눈총을보냈다.

<내각정치생명걸고반원협상매듭노려| 기지로 활용할 형태는 유지될듯>
여기에 경제대국 일본이정치대국으로「점프·업」하기위한 진통이었다.
『72년·핵무기제거·일본본토에준하는 기지형태로서의「오끼나와」반환』을 일본은 바라왔다.
일본여당인 자민당일각, 그리고 보수야당과 혁신야당은 한 그루가되어 이반환원칙을 좌등수상에게 강요해왔다.

<극동방위 외면못해>
그러나 미국의 극동안보체제속에서 이상할이만큼 팽창한 오늘날의 일본은 미국의 극동방위정책의 진의를 외면할수없는 딱한입장.
「아시아인의아시아」…대원칙이 차츰「닉슨」정책속에서 노출되고 미국을 대신해야할 대국(?) 일본의 극동안보책임이「클로즈업」되자 태평「무드」에 취해있고 일본은·평화준법의 개정논마저 삭트기 시작할 정도였다.
더욱이 극동의 긴장지대-한반도·월남·중국본토에 대한 정세분석엔 미일간에 아무런 이견이 있을수없었다.
여기에「오끼나와」가 극동방위상「키·스톤」이라 아니할수없는전략·전술적인 위치를 일본의 위정자는 아무도 부인하지못했다.
첫째 한반도의 정세에 있어서는 이지역엔 아직도 긴장이 존재하고있고 일본은 한국의 안전이 일본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것을 충분히 인식하고있다.

<대중공관 서로양보>
둘째 중국정세에 대해선 문화혁명, 중소국경분쟁등에 의한 평면적인 분석은 미일간에 의견을 같이하지만『중공이 국제사회에 복귀하도록희망』하는데그치는 소극적인표현방법으로양자가감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월남 사태에 대해선 미일 양국간에 많은쟁점이있다. 미국으로선월남전을또조속히 종식시킨다는 희망을갖고있지만 72년「오끼나와」반환원칙이 전제가되면 그때까지 월남에 평화가 온다는 보장은 어렵다. 여기서미일량국은『월남전쟁이 조속히 종결되기를 열망한다. 만일「오끼나와」반환때까지 월남전쟁이 계속될경우엔 대월남정책에대해 다시협의한다』는 예외조항을공동성명속에 넣어「오끼나와」에서의 B·52발진등 전략기지로서의「오끼나와」의 위치가 손상되지않도록 고처할것으로 보여진다.

<돌발사태때는 활용>
또극동의 전장상태를 최전선에서 체험하는한·중·월에대한「눈치」도 살펴야 하는미국이다. 이래서 미국은72년「오끼나와」반환의 원칙은 지키고 다만 기지로서『돌발사태에신속·유효하게활용할수있는형태』만은 해치지않은「타협적인「오끼나와」반환이 이번 미일수뇌회담에서 결실될 가능성이 짙다.

<좌계학생난동|불발탄으로 끝나>
좌등일본수상의 방미를 저지하려는「반대대목」계 과격파학생들의 소위「11월공세」는 불발탄으로 끝났다. 지난16일 2만5천명을동원한 경찰기동대의 선제공격과경찰의 대「게릴라」작전이주효, 학생폭도의 화염병과 경찰의「개스」탄 대결은경찰의 승리로 돌아갔다.

<70년안보개정 전양>
일본주요신문은 17일자 사설에서『반사회적인 화염병투쟁』(조일)『묵과할수 없는 과격학생의 폭동』(매일) 이라는 제목아래 과격파학생들의 폭거를 지탄했으며 이때까지 직접적인 규탄을 외면해온 NHK마저 이들 과격파학생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올해는 70년안보개정의 첫해라는 일본의 정치정세와 학원투쟁의 격화란 사회정세가 겹쳐 학생들의 움직임은 지난1월18∼19일 양일간의 동경대학사건을 계기로 전례없는 격앙과 파괴를 몰아왔다.
2년전 제1차「우전」사건에서 일본사회의 표면에나타난 일본의 좌익최과격파「반대대목」계학생들의 소위「게발트」봉투쟁은 좌세보·성전·왕자등 미군기지철거투쟁으로부터 대학분쟁으로 변모하면서 커나왔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폭력부정의 여론속에서 일부학생·시민·노무자들은 대학분쟁단계에서는 어느정도 공감을갖는듯했으나 지난해 가을부터 이들의 학원투쟁은 70년안보투쟁의 정치적성격을띠고 일공계 또는 일반학생과의 대립이 빈번해지면서 폭력난동의 양상은 격화했다.

<경찰기동력에 눌려>
지난1월「안전」강당의 동대학생을 제거하기위한 경찰의 기동대도입에서 비롯되어 각대학이 과격학생추방에 경찰의 강권을 이용하면서부터 이들과격파학생들은 거점을잃게됐다. 여기서 과격학생들은 거리에 진출,시민에게 불안과 불변을주는 파괴행동을 하지않으면 안될 궁지에 몰린것이다.
지난 13일부터 게시된 소위「11일결전」에서「오끼나와」반환을 부르짖는 이들 과격파학생들은『좌등수상의 방미저지는 70년안보발기투쟁에 연결된다』는「슬로건」을내어걸어 일본의 신좌익세력의 단합을 꾀했다. 이래서 지난16일 하오 3시부터 약2만명으로 예정됐던 과격파학생들의 우전공항진출작전은 우전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포전역점령에 전력을 기울인 것이다.

<9천여명이나 체포>
그러나 이들 과격파학생들은①경찰기동대가 미리 과격파집단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유치했으며②사전에 2천7백여개에 달하는 화염병을압수당했고③화염병과「게발트」봉을 가진 보급반과 연결이 안돼 무기가 부족했고④지방에서 온 상경학생이 많았기 때문에 동경의지리에 어두워전력이 떨어졌으며⑤지난 4월28일의「오끼나와·데이」와 지난10윌21일의「반전데이」때의 과격행동 때문에 경찰에체포된 학생수가 16일현재 8천9백명에 이르러 완전히전의를 상실, 16일의 투쟁에서 패배하고 만것이다.

<앞으로 세력 줄듯>
일본경찰은 좌등수상의 방미저지에 나선 과격파학생2천72명(이중 여학생2백62명)을 16일 하루에 체포함으로써 이때까지 모두1만여명을체포했다. 일본의 과격파학생들을 4만으로 경찰이 보고 있는데 이미 체포된 학생은 4분의1에 해당한다. 더욱이 채포된 학생들은 모두 이들의 투쟁에서 조직과 지휘를하는정예분자이기때문에「리더」를잃은 나머지 3만의 학생들이 약화된것임에 틀림없다.
이에따라 이들은 앞으로 일공계학생들과의 투쟁에서도 패배할 가능성이짙어졌으며 70년안보투쟁에서 이들의 전력이 크게 줄어들것임에 틀림없다.

<사진>상우전공항을 떠나 방미길에 오르는 좌등수 상부처, 좌는 애지외상, 가운데 머리를 수그리고 있는 사람은 전목촌궁방장궁. 하좌등방미반대「데모」를 벌이다가 체포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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