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 선보인 「붉은 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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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에 소련은 「말레이지아」에서 대규모의 소련 상품 견본 시장을 개설, 동남아 각국에 대한 저자세이긴 하지만 단호한 통상, 외교 공세를 펴서 그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갖가지 억측이 나돌고 있다. 소련이 「말레이지아」나 「싱가포르」와 외교 통상 관계를 맺은지는 이미 2년이 넘었는데 지난 9월23일부터 「쿠알라룸푸르」서 열린 견본서를 통해 대규모 전시와 상품 선전에 주력, 그 움직임이 급작스레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 각국에 대한 소련 통상 정책은 공산 혁명의 「이데올로기」 같은건 절대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러한 소련의 신중한 미소 정책을 「말레이지아」와 「싱가포르」는 경계를 하면서도 따듯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 나라로 보면 천연고무의 가장 큰 고객인 소련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71년 말로 예정된 영군 철수에 대응해서 이두 나라는 외교·국방 정책을 신중히 재검토해야할 단계에 있는 만큼 소련과 같은 강대국을 강력히 배척할 수는 없는 입장에 있다고들 풀이하고 있다. 한편 소련의 입장에서는 68년의 경우 「말레지아」에 대한 수출이 불과 2백50만불 인데 비해 수입은 6천5백만불이나 되는 엄청난 역조이기 때문에 대대적 판매 운동을 벌이려는 것이다.
「쿠알라룸푸르」 견본시에는 약 60명의 기술자가 「모스크바」에서 전시 준비를 위해 몰려왔고 개회식에는 「아시아」 시장에 경험 있는 수행원을 대동한 10명의 소련 고관 일행이 대거해서 「말레이지아」를 방문했다.
이 견본시에는 10만개가 넘는 소련의 수출 상품 중 대표적인 것 2천개를 골라서 전시했다. 이 가운데는 농업기계, 각종 차량, 선반 「프레스」 같은 공작 기계, 그리고 직물, 도서, 식품, 수예품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말레이지아」의 세은이 원조하는 2대 관개 사업 계획에 참여해서 기계류를 대량 판매하려는 움직임을 뚜렷이 하고 있다. 소련은 이미 「말레이지아」 업자에게 12건의 소련 상품 배급권을 주었으며 견본시 기간 중에 만4건의 판매·보수 대리점 계약을 맺었고 일부 「말레이지아」인은 「모스크바」의 공작 기계 공장에서 보수 훈련까지 받고 있다고 선진중이다.
한편 「말레이지아」측도 이들 소련의 통상 사절단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소련 측도 「말레이지아」와 「싱가포르」 시장 진출이 쉽사리 이루어질 것을 낙관하는 것은 아니며 장기적으로 꾸준히 파고들 태세를 갖추고 있다.
「말레이지아」와 「싱가포르」는 중공과의 거래가 꽤 많고 또한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무역 수교는 중공 측이 대폭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는 중공 측을 탐탁찮게 생각하고 있다.
소련으로서는 이러한 점 역시 간과하지 않고 「말레이지아」와 「싱가포르」서의 소련의 득점은 곧 중공의 실점이 된다는 생각이 보다 큰 적극 진출의 동기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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