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황금 깃털 극락조, 16세기 유럽인의 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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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류학자인 존 굴드(1804~81)가 임종 직전 왕극락조 박제를 손에 들고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존 에버렛 밀레이, 강한 열정(The Ruling Passion) 혹은 조류학자(The Ornithologist), 1885, 캔버스에 유화. [그림 글래스고 켈빈 그로브 미술관 및 박물관]

낙원의 새를 그리다
데이비드 애튼버러·에롤 풀러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256쪽, 2만 3000원

투박하지만 정직한 책 표지에 손이 이끌렸다면, 책 속에서 눈빛이 살아있는 새들을 보고 마음까지 뺏길 공산이 크다. 부제가 ‘극락조의 발견, 예술, 자연사’다. 영국 BBC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데이비드 애튼버러와 자연사 전문 저술가 에롤 풀러가 함께 엮었다.

이들은 머릿말에서 “극락조과를 집대성한 완벽한 종속지(種屬誌)를 쓸 의도는 전혀 없다. 조류학 지식을 꽤 많이 곁들이면서 미술과 역사를 통해서 자연을 여행하는 것에 더 가깝다”(35쪽)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 책을 통해 극락조(極樂鳥·birds of paradise)의 모든 것을 알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은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유럽인이 극락조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려왔는지, 왜 낙원의 새란 뜻의 극락조라고 이름을 붙이고 경배했는지 연대순으로 추적해본다.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재현한 그림 200여 점은 유럽인이 이 희귀한 새에 얼마나 열광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극락조는 파푸아뉴기니를 주 서식지로 삼는다. 1552년 세계를 처음 일주하고 돌아온 빅토리아 호를 통해 유럽에 알려졌다. 비록 죽은 표본이었지만 유럽인은 곧고 길게 뻗은 황금 깃털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자연사학자들조차 천상의 낙원에서 이슬을 먹고 사는 새라고 여겼을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이후 많은 화가들이 극락조를 그렸지만, 죽은 표본을 놓고 그리다 보니 틀린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는 것.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그 틀린 점을 미덕이라고 설명한다. 빈약한 표본을 생동감 넘치게 실사화한 상상력 또한 예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 아니냐는 것이다. 누가 그렸는지, 왜 그렸는지에 따라 같은 새가 달리 표현된 것을 확인하고 나면 그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럽인에게 극락조는 신대륙에 대한 환상, 그 자체였다. 오죽했으면 극락조 종에 유럽 왕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당시 유행하던 아첨의 기술이었을까. 깃털 자체도 장식품으로서 훌륭한 교역품이었다. 희귀할수록 후한 값을 받았기 때문에 탐험가들은 새로운 종을 잡기 위해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자신들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무수히 많은 환상의 새를 살상해야 했던 점은 이 책이 품고 있는 역사의 잔인한 풍경이기도 하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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