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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변동성을 먹고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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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한창 자라나는 초여름 들판의 곡식들이 행여나 목이 탈까 걱정스러웠나.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다. 폭우에다 눅눅하고 습한 날씨로 제습기 등 제철 아이디어 상품만 특수를 누리는 모양이다. 반면 남부지방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나아가 지구촌 곳곳이 이상기후로 큰 시름을 앓고 있다.

 날씨 못지않게 요즘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변화무쌍하다. ‘지구촌 이웃’이란 말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은 정보통신기술에 힘입어 한마디 발언에도 동시다발적으로 즉각 반응을 보인다. 그 중심엔 요즘 말로 ‘진격의 존재감’,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19일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tapering)’를 언급하자 전 세계 금융시장은 금세 출렁였다. 0%대로 기준금리를 낮추고, 시중 채권을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마침내 글로벌 금융위기란 터널의 끝이 보이려던 시점에 그의 이 말 한마디는 금융시장 참가자들에게 때아닌 ‘한파’요 ‘홍수’로 작용했다.

 ‘좋을 땐 효과, 나쁠 땐 쇼크’라 불리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도 금융시장의 이상변동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일례로 은행 지점 앞에 걸린 상품 안내를 보면 얼마 전 연 4%가 넘었던 예금금리가 이젠 연 2%대로 내려앉았다.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선 반도 안 된다. 1000만원을 1년간 정기예금에 넣어봤자 20만원 남짓한 이자밖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주가지수는 사상최고치를 넘나드는데 우리 주식시장은 뒷걸음치는 모양새이니, 한 푼 두 푼 저축해 목돈 만지던 지난 시절이 그리운 건 모두가 마찬가지일 게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브라질·터키·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시장 통화로 표시된 외화채권 투자를 권유하는 금융상품 광고가 시선을 잡아 끈다. 일찍이 일본에서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자 민간부문에선 재테크 목적으로 고금리 외화채권 투자가 인기를 끌었다. 이런 일본 투자자를 ‘와타나베 부인’이라 부른다. 우리말로 따지면 ‘김여사’ 내지 ‘이여사’쯤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 국채 5년물 금리가 3% 초반인 데 비해 이들 신흥시장 국가의 비슷한 만기 국채금리는 7~10%에 달한다. 채권의 가격 시세는 시중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5%의 이자를 약속받고 투자했는데 며칠 안 가서 시중금리가 10%로 오르면 허탈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외화표시채권에 투자하는 경우엔 환율변동에 따른 손익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브라질 국채에 투자한 경우 지난 3개월간 브라질 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격손실은 7.5%인 반면 환율변동에 의한 손실은 12.5%에 달해 전체 원금의 20%가 사라질 판이다. 해외 채권투자에서는 금리보단 환율이 더 큰 복병이기에 외환시장에 어두운 개인일수록 더욱 유의해야 한다.

 금융시장은 변동성을 먹고 산다. 변동성 없이 내일이 훤히 예상된다면 너나 할 것 없이 값싼 것을 사려고 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테고,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그 가격을 올려 이익을 낼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전 세계를 상대로 값싼 자금줄 역할을 하던 연준이 슬슬 세계경기가 되살아나려고 하자 조만간 양적완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친절한(?)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이를 금리인상(tightening)의 신호로 성급하게 받아들인 금융시장에선 금리가 치솟고 미 달러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는 등 그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저금리 기조에서 수익률을 높이려고 돈 되는 투자를 좇아 무리를 지어 다니던 선진국 투자자들도 뉴욕, 런던 그리고 홍콩의 지리적 차이를 없애준 정보통신기술 덕택에 눈 깜박할 사이에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한다. 더욱이 이들이 출구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세계 금융시장에선 온탕·냉탕이 반복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처럼 촌각을 다투는 현상은 더욱 잦을 것이다. 올해 장마는 유독 변화무쌍하다. 폭우와 폭염 사이를 수시로 오락가락하는 걸 보니, 커져가는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