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한미군 철수 이런 식은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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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사태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제기되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 논의는 우리를 당혹케 한다.

촛불시위가 반미로, 반미가 주한미군 철수로 확대되면서 미국은 음양으로 불쾌감을 표시해왔다. 노무현 정부의 미국 특사단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당시 미국 쪽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제기했다는 얘기들이 나올 때만 해도 우리는 설마 하면서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 장관이 미 상원 군사위에서 주한미군 재배치 및 일부 감축을 제기함으로써 이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기정사실화돼 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나 당선자 쪽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책이나 입장을 밝히지 않고 "막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하거나 "미국의 전반적인 세계전략 속에서 재조정"이라며 마치 남의 일처럼 넘기려 하고 있다.

양국의 이러한 태도를 볼 때 철수 논의가 한.미 간의 긴밀한 전략적 협조 아래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한국의 새 대통령이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를 제의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나아가 서울과 비무장지대 지역에서 많은 병력을 철수시키겠다는 등 철군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음을 밝혔다.

비무장지대와 서울에서의 철수는 북한의 무력 도발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상징하는 인계철선(trip-wire)으로서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럼즈펠드의 말로만으로는 盧당선자가 어느 정도의 강도로 논의를 제기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盧당선자의 "다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낫다.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는 발언이 말해주듯 대북문제에 대한 인식과 처방이 미국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盧당선자의 이러한 인식이 미국으로 하여금 "동맹국과 이렇게 의견이 다른데 그렇다면 더이상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킬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는 생각을 갖게 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주한미군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도 언젠가는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우리 독자적으로 안보를 감당할 날이 빨리 오기 바란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은 아니다. 북핵 문제로 위기가 고조되고, 그렇지 않아도 한.미 양국에 앙금이 깊어가는 이때 이 문제가 나온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한미군은 전쟁억지력 핵심으로 기능하고 있다. 때문에 주한미군이 없는 한반도는 군사적 불안정을 의미하며 외국투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등 경제적.사회적 혼란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 점을 한.미 양국은 명심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재배치가 필요하다면 양국의 긴밀한 협조 가운데 진행돼야지 지금같이 일방적.감정적이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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