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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 '알렉산더 칼더 회고전' 내일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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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알렉산더 칼더 회고전을 맞아 리움 개관 당시 설치됐던 ‘거대한 주름 ’이 다시 나왔다. 높이 7.7m의 대형 모빌로 1971년작이다. [사진 삼성미술관 리움]

“이 사각형들이 움직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1930년 몬드리안(1872∼1944)의 파리 작업실을 방문한 미국 출신 신출내기 아티스트 알렉산더 칼더(1898∼1976)의 감격에 찬 말이다. 흰 벽에 원색 사각형 판자가 붙어 있던 작업실에서 몬드리안은 “아니, 그럴 필요 없네. 내 그림은 이미 너무 빠르다네”라고 답했다.

 이 날의 경험에서 ‘움직이는 조각’ 모빌이 탄생했다. 같은 해 칼더는 공간에서 움직이는 추상조각을 창안했다. 이걸 본 마르셀 뒤샹이 ‘모빌’이라 명명했고, 이듬해 장 아르프는 칼더의 움직이지 않는 조각을 ‘고정된’이라는 의미의 ‘스태빌’이라고 불렀다. 칼더가 키네틱 아트(Kinetic Art·움직이는 미술)의 선구자가 된 과정이다.

몬드리안 그림에서 아이디어 얻어

‘21개의 하얀 잎사귀’를 들고 있는 56세의 칼더. 그는 길거리서 주운 것들로 뭔가 만들어 주변에 선물하기를 좋아한 장난꾸러기였다. [사진 칼더재단]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은 ‘움직이는 조각-알렉산더 칼더’를 18일 개막한다. 뉴욕 칼더재단과 공동 기획한 이번 자리엔 칼더의 대표작이자 현대조각의 혁신을 이룬 모빌·스태빌을 비롯해 초기의 철사 조각과 드로잉·회화 등 110여 점이 공개된다. 일부는 뉴욕 현대미술관,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등에서 대여했다.

 칼더는 움직이는 조각으로 작품 주변의 공간을 새롭게 깨닫게 했다. 과거에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관객의 현재와 함께하는 작품을 시도했다. 그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교과서 작가’로 떠오른 배경이다.

 무엇보다 장난기 가득한 작품이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 끈다. 오늘날 아기들이 만나는 ‘생애 첫 작품’이 공중에서 흔들거리는 모빌 아닌가. 전시에 맞춰 방한한 칼더의 외손자 알렉산더 로워(칼더재단 대표)는 “할아버지 이전엔 아이들 장난감 형태로도, 모빌은 존재하지 않았다. 비슷한 것이라야 교회나 절의 종 정도였을 거다. 특허를 내지 그랬느냐는 말도 무리는 아닌 것이, 전시 때마다 아트숍에서 ‘제발 이런 건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장난감 같은 것을 내놓는다”라며 웃었다.

 칼더의 할아버지·아버지는 조각가였다. 어머니는 화가였다.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자기 공구가 생겼고, 지하에 공작실도 갖췄다. 칼더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게 무언가를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도록 독려했다. 내 작업실엔 모두들 드나들며 관심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11살엔 부모님 크리스마스 선물로 황동판을 접어 개와 오리를 만들었다. 오리는 가볍게 톡 치면 앞으로 흔들리는 키네틱 조각이었다. 이후 공대로 진학했고, 4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고민 끝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 스물다섯에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 입학했다. 당시로서는 첨단이었던 인상파 미술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예술성·대중성 고루 갖춘 조각가”

 칼더는 3년 뒤 파리로 건너갔다. 어릴 적 주특기를 살려 철사를 꼬아 동물 모양을 만들었고, 이걸 이용해 서커스 공연 영상을 찍는 등 미술의 엄숙함을 탈피한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전시엔 미술학도 시절의 초기작, 철사 동물, 서커스 영상 등도 출품, ‘새로움의 탄생’을 엿보게 했다.

 홍라영 리움 총괄부관장은 “칼더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한 혁신적 조각가다. 관객들이 국내 최대 규모 칼더 회고전을 통해 창의·혁신의 영감을 받길 바란다”고 했다. 10월 20일까지. 초등생 가족 워크샵 등 부대행사도 준비됐다. 일반 8000원, 초중고생 5000원. 02-2014-6901.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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