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벼른 아베 "부모 원수 같은 선거 꼭 이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반드시 이긴다. 부모의 원수와 같은 선거다. 만약 이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난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

 21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각오다.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으로 규정한 것이다. 왜 ‘부모의 원수’ 같은 선거인가.

 2006년 9월 전후 일본의 최연소 총리(당시 52세)가 된 아베의 지지율은 70%였다. 역대 4위의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은 아베는 거칠 게 없었다. 젊은 측근들로만 내각을 꾸려 ‘친구 내각’이란 오명을 샀지만 개의치 않았다. 헌법 개정과 교육기본법 개정 등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하려 했다.

2007년 민주당에 져 두 달 뒤 총리 사퇴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료들의 실언과 자금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들은 이내 등을 돌렸다. 결국 아베는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37(자민당) 대 60(민주당)의 기록적 참패였다. 참의원 제1당의 자리는 민주당에 넘어갔다. 이는 결국 2년 뒤 총선(중의원 선거) 패배와 정권 교체의 빌미가 됐다. 선거 패배 후 아베는 두 달을 더 버티다 9월 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도망치듯 짐을 쌌다.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마침표였다.

 그로부터 5년 만인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로 컴백한 12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정권을 탈환한 아베는 아베노믹스를 무기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가 벼르고 별러 온 설욕전은 이제 엿새 남았다.

 양원제인 일본에선 중의원을 잡아야 정권을 쥔다. 중의원 다수당의 총재를 총리로 선출하기 때문이다. 참의원 선거는 정권 향배와는 무관하듯 보이지만 일본 정치사에선 많은 총리가 참의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도중 하차했다. 참의원 선거가 갖는 중간심판적 성격 때문이다.

 또 중의원은 여당, 참의원은 야당이 장악하는 이른바 ‘뒤틀림 의회’ 양상이 되면 제아무리 인기 있는 총리라도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못하고 1년 안팎의 단명으로 그치는 현상이 2012년까지 6년간 반복돼 왔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참의원 과반수를 탈환하고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게 아베의 야심이다.

 현재 집권 자민당은 중의원 480석 중 294석을, 연립여당 공명당(31석)을 합치면 325석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참의원은 242석 중 84석으로 과반은커녕 민주당(86석)에도 밀린다. 임기 6년의 참의원은 3년마다 교대로 의석의 절반인 121석을 뽑는다. 이번에 새로 뽑지 않는 121석 중 자민당(50석)과 공명당(9석)은 59석을 확보 중이다. 따라서 두 당이 이번 선거에서 63석 이상을 확보하면 참의원까지 장악하게 된다.

이번엔 아베노믹스 내세워 과반 확실시

 아베는 6년 전 아베가 아니다. “옛날엔 너무 어렸고,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고 스스로를 반성하며 반년간 신중하게 정권을 운영했다. 최근 조금 떨어졌지만 지지율은 여전히 50%를 넘는다. 무엇보다 강한 무기는 아베노믹스다. 돈을 풀고, 공공사업을 일으키고, 성장 기반을 확충해 불황의 수렁에서 일본을 탈출시키겠다는 아베노믹스에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다. 경제 정책 지지율도 55%에 이른다. “전후 체제로부터 탈출하자”며 헌법 개정만 부르짖던 과거의 아베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폭염 속에서 빡빡한 유세를 소화하고 있는 그는 13일 삿포로(札幌)에서 이렇게 외쳤다. “(아베노믹스가 진전되면) 고깃집에 가서 싼 고기만 먹는 게 아니라 갈비도, 우설(소 혀)도, 양 곱창도 먹을 수 있다. 한 잔 마시던 맥주를 세 잔 네 잔 마시면 고깃집 주인도 이자카야(居酒屋) 주인도 돈을 잘 벌게 된다. 이제 일본이 갈 길은 아베노믹스밖에 없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자민당이 121석 중 63~73석을, 공명당이 8~12석을 얻을 것으로 분석했다. 공동여당이 전체 242석 중 130~144석을 차지하는 시나리오다. 자민당이 72석을 따내 단독으로 과반을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아베의 원맨쇼는 무기력한 야당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3년간 정권을 쥐었다 야당으로 추락한 민주당은 자민당의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엉겁결에 대표를 맡은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는 “선거 포스터를 함께 찍자”는 후보자들이 별로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우익야당 일본유신회는 스스로 무덤을 팠다. 지난 총선에서 54석으로 민주당(57석)의 제1야당 자리를 위협했던 기세는 사라졌다. ‘위안부는 필요했다’는 공동대표 하시모토 도루(橋下徹)의 망언 한 방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하시모토가 뜨면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러대던 열성팬들도 자취를 감췄다.

 전체적인 승부의 추는 이미 연립여당으로 기울었다. 관심은 중·참 양원을 모두 장악한 뒤 아베가 보일 모습이다. 그동안 잠시 봉인해뒀던 평화헌법 개정 등 우경화 프로젝트와 역사 왜곡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지, 아니면 한국·중국과의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면서 관계 회복을 시도할지에 따라 동북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아베가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적이 없어 정권 내 핵심 측근들도 섣불리 7·21 참의원 선거 이후의 전망을 뚜렷하게 못 내놓고 있다. 나카니시 히로시(中西寬·국제정치학) 교토(京都)대 교수는 “국제적 마찰을 회피하면서도 (자신을 추앙하는) 국내 지지자들이 이반하지 않도록 세심한 정국 운영을 하려 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화헌법 개정 등 본격 추진할지 주목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아베는 일부 측근들로부터 “참의원 선거 뒤 미·일 동맹 강화를 위한 과제들을 우선시하고, 역사 문제는 접어두자”는 건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국방력 강화 등 미국이 환영할 과제들은 추진하되 한국·중국은 물론 미국까지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역사 왜곡 행보는 자제하자는 논의다. 자민당이 어느 수준의 대승을 거둘지, 연립여당이면서도 아베의 우경화에 반대하는 공명당이 얼마나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지도 향후 아베의 행동을 제어할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