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정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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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가게문을 나섰다. 방금 주고 받은 대화를 되뇌면서.
『이것 얼마예요?』나는 마음에드는 옷 한가지를 골라들고 그 가격을 물었다. 『특별히 잘해드립니다. 에누리없이 1천7백원만 내시오.』
나는 어이가 없어 할말을 잊었다. 1천2백원에 샀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는데 이렇듯 엄청나게 많이 부르면서 특별히 잘해준다고 하다니.
○…더우기「에누리없이」란 말을 전제하면서 까지 말이다. 내가 몹시 어수룩해 보인 탓일까. 아무말없이 돌아서는 나의 등뒤에 얼마면 사겠느냐는 말이 뒤를 따랐다. 벌써 몇번째 당하는 일이다.
언제면 우리의 생활 주변에도 좀 즐거운 마음으로 물건을 살수 있게 될는지…. 나에겐 언제부터인가 이 「정찰제실시」에 대한 아쉬움이 간절한 염원처럼 되어버렸다.
○…언젠가 내가 사는 주변의 S시장에서 엄격한 「정찰제실시」에 대한 표어를 내걸고 공고문을 내어붙이고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즐거움으로 찾아든 나는 한아름 더 큰 실망만을 안고 되돌아 서야했다. 상품마다의 그 가격표는 하나의 명목에 불과했고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들의 그 승강이는 예나 변함이 없었다. <김옥련·주부·서울영등포구 신남동 9통3반 김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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