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대분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생활의「템포」가 빨라지고 모든일이 분업화되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생활의 멋을 잃었다고한다.
난초 한뿌리, 국화 한잎에서 풍류를 즐기던 선인들의 유유자적은 고상하고 제나름의 취미와 도락조차 남의 손을 거쳐 즐기게시리 됐다.
화분대여업 (대분업) .
이 이색직종은 이런세태에 발맞추어 생겨났다고. 10년째이업에 종사해온 김동선씨(서울성수동2가 339·D화원주인)는말한다.
한 그루에5∼6만원씩하는 「아래카야자」 「피닉스」 「도시로」등 값진 열대식물들은 웬만한 부유층이 아니면 구하기조차 힘들고, 이에 못지않게 관리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든다.
더욱 먼지와 소음에 시달리고 자욱한 담배연기에 숨조이는 도심지의 다방, 음식점등 접객업소나 회사, 관공서등에서 눈이라도 피로하지 않게 싱싱한 화분을 마련하기는 좀처럼 어려운 실정.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남보다 앞서 이 업에 손을 댔다는 김씨의 온실에 들어서면 사철을 함께 맞는다. 50평남짓한 7개의 온실에 2백종이 넘는 3천여개의 화분. 봄과 겨울이 한대와 열대가 마치 시간과 공간을 압축해 놓온듯 나란히 이웃하고있다.
대부분 수입물인 이들각종 화분들은 온실에서 얼맛동안 치장을 한뒤 충무로와 종로에 있는 점포로 옮겨지고 그뒤 여러곳으로 새주인을 찾아 팔려간다.
현재 김씨가 빌려주고있는 곳은 농어촌개발공사, 무역진흥공사등 열군데의 관공서와 각급학교, 이름있는 D요정, S다방등 50여개소.
종류와 크기에 따라 차는 있지만 한달에 세번정도 갈아주고 3천원, 그아래로 1천5백원짜리, 꽃병은5∼6백원이면 된다.
『자유당 때는 재미도 보았지요. 그때만 해도 어느누가 감투를 썼다면 그 집에 들어오는 화분의 숫자로 당대의 세도를 가늠하지 않았읍니까?』
어느 고관은 전임자때보다 화분이 적다고 비서들을 시켜 시내 화원에서 각종 화분을 모아다 붉은 「리번」을 매어놓고 으쓱해했단다.
『대분업이 활발해진것은 꽃장사 경기가 기울어졌다는 좋은 반증일 것입니다.』
더욱 가정의례준칙이 선포되고 축하화분이 금지된 요즘은 된서리를 맞은 기분이라고.
이들 업자들이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고객들이 자기 물건이 아니라고 관리에 소홀한 것. 조금만잘못 다뤄도 곧 시들어버리는 열대 식물은 자칫쓰레기로 변하거나 고작 불태워 비료로 써야할 형편이 된다.
물론 종류에따라 대분계약때 판상조전을 규정해놓지만 대부분 지켜지지않아 업자들만이 골탕을 먹는 경우가 많다.
지난24일 Y다방 화재때 김씨는 맡겨놓은 화분을 되찾으러 불속을 서성거리다 경찰관에게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
진귀한 것이어서 빌려주고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려 관리상태를 점검하고 손수 물까지 주던「자식같은 놈」이었다. 현재 서울시내에는 B화원 C화원등 기업규모의 화원이 7개이고 지방으론 수원의 S화원, 부산 L화원, 조치원 H농원등 15개가 있고 이들은 관상수생산자협회라는 친목단체를 이루고있다.
대분업만으로 별재미를 못봐 이들은 일본·대만·「오끼나와」등지에서 묘목을 수입하기도하고 직접생산하기도하며 도로변 미화, 정원공사등을 청부 맡기도한다.
아뭏든 꽃속에서 생활하니 즐겁고 화원을해서 크게 망한 사람이 없어서인지 한번 손을댄 사람은 다른 직업갖기를 원하지 않는다니 그런대로 할만한 사업인것같다.<주원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