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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퍼거슨, 그리고 트위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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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영국 프로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 경은 말 한마디로 선수들을 휘어잡았다. 2011년 5월 퍼거슨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한 건을 터뜨렸다. “트위터는 인생 낭비다.”

 당시 트위터 논란에 휩싸인 웨인 루니 등 일부 선수들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그는 선수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나무랐다. 그의 어록은 이렇게 이어졌다.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수백만 가지다.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라.”

 이 명언을 지금 뼈저리게 통감하는 사람이 기성용(24) 선수가 아닐까 싶다. 그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재목이다. 중원에서 물 흐르는 듯한 패스로 공수를 조율하는 그의 몸놀림은 분명 한 차원 높은 축구였다. 그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비밀 페이스북 계정에서 최강희 전 국가대표 감독에게 막말을 늘어놓은 게 드러나서다. 기성용 선수는 즉각 사과했지만 파문은 퍼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미 “기성용의 행위가 징계 대상이 되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악의 경우 기성용 선수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영구제명시켜라”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온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했다. 기성용 선수의 막말은 분명 잘못됐다. 그는 사실상 팀을 모욕했다. 모든 선수가 주전으로 뛸 수는 없다.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 그런 희생이 모여 위대한 팀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한걸음 물러나 생각해보자. 그는 어린 나이에 축구 유학을 갔다. 홀로 세계 최고의 리그를 개척했다.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무척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SNS가 세상과 이어주는 끈이었다. SNS는 소통의 도구다. 트윗 한 번이 ‘아랍의 봄’을 불러오는 밑거름이 될 정도다. SNS를 가까이 했다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미성숙한 그의 품성이지만, 이마저도 용서해야 한다. 기성용 선수는 아직 젊다. 그가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면 한국 축구의 귀중한 보물이 될 수 있다. 다만 짚어야 할 게 있다. 운동선수뿐 아니라 SNS를 활용하는 모든 누리꾼의 마음가짐이다. SNS 세상은 절대 익명(匿名)의 공간이 아니다. 일거수 일투족이 노출된다. 자신이 남긴 흔적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결국 SNS공간에서는 이용자의 지성과 품격이 더욱 요구된다는 뜻이다.

 아쉽게도 지금 SNS는 위기에 놓였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비난이 날것 그대로 배설되는 곳으로 전락해서다. 퍼거슨 감독은 이런 현실을 지적했다.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트위터는 쓰기 여하에 따라 값진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 퍼거슨 감독이 “트위터는 인생에서 쓸모 있다”고 발언을 수정하도록 만드는 건 이용자들의 몫이다. SNS는 죄가 없다.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