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운 그곳] '고령화가족' 을왕리 해수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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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령화가족’에서 인모네 가족이 모처럼 단란한 한때를 보낸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촬영은 인근 마시안 해변에서 했다.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고령화가족’을 보며 유독 바닷가 장면이 눈에 밟혔다. 결혼에, 일에, 인생에 실패하고 중년의 나이로 ‘엄마네 집’에 기어든 삼 남매가 모처럼 엄마를 모시고 가족여행을 간다. 그런데 그 장소가 인천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이다.

천성관 작가의 원작 소설에는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영화를 연출한 송해성 감독의 대표작이 ‘파이란’ 아닌가. 삼류건달 강재(최민식)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러나 이제 만날 수도 없게 된 중국인 아내 파이란(장백지)의 편지를 울먹이며 읽는 바닷가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었다. 촬영지였던 강원도 고성 대진항도 관광명소가 됐다. 을왕리 해수욕장 장면에도 뭔가 숨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영화사에 물었더니 다소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주인공들이 원체 콩가루 가족이잖아요. 잠시나마 단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왜 을왕리 해수욕장이었냐고요? 서울에서 가까워서요. 촬영 일정이 빠듯했거든요….”

그래도 현실적인 선택치고는 제법 절묘하다. 서울에서 훌쩍 다녀올 만한 가까운 바닷가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데가 바로 을왕리 해수욕장이다. 을왕리는 1980~90년대만 해도 수도권에서 알아주는 피서지였다. 1986년 국민휴양관광지로 지정되면서 을왕리에는 숙박업소·편의시설이 줄줄이 들어섰다.

오래된 관광지가 으레 그렇듯이 지금은 다소 낙후한 인상이지만, 조개구이집이 늘어선 700m 길이의 반원형 백사장, 야영하기 좋은 자그마한 해송 숲은 여전히 하루쯤 놀다 가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게다가 바로 옆 인천국제공항까지 공항철도가 뚫리면서 을왕리 해수욕장은 자가용이 없어도 두어 시간이면 닿는 거리가 됐다. 아담해도 딴에 바다라고, 막막할 때 찾아가면 제법 위안이 된다. 그러니까 곁에 있어줘 고마운 바다다. 낡고 비좁은 아파트에서 서로 아픈 데만 물고 뜯던 삼 남매가 가까운 바다나 보고 올까 하고 고를 법한 장소로는 아주 그만인 셈이었다.

‘고령화가족’의 을왕리 해수욕장 장면은 대부분 인근 마시안 해수욕장에서 찍었다.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서쪽으로 4.5㎞쯤 떨어져 있는데 아직 덜 알려져 한적한 맛이 있는 해변이다. 갯벌에서 조개잡이 체험도 가능하다한모(윤제문), 인모(박해일), 미연(공효진) 남매가 몹쓸(?) 가족애를 드러내며 패싸움에 휘말리는 횟집도 마시안 해변에 있다. 잠진교 다리 입구에 있는 ‘소나무(선영이네)’이다. 영화 촬영을 위해 지은 포장마차 시설을 고스란히 살려 영업 중이다. 032-746-3263.

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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