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추상화, 독해하기보다 그냥 즐기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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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바깥의 풍경을 담는 거울이었던 미술은 20세기를 지나면서 점차 그 자체가 풍경이 되었다."

윤난지(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가 '현대미술의 풍경'(한길아트, 372쪽, 2만2000원) 개정증보판을 내며 한 말이다. 미술 이론 책으론 이례적으로 개정증보판을 낸 윤 교수의 이 말은 난해한 현대 추상미술에 한 걸음 다가가는 실마리로 읽힌다. 우리가 바깥의 풍경을 보며 꼬치꼬치 캐묻지 않듯이 이제 하나의 '풍경'이 된 현대 추상미술도 부담없이 보라는 뜻이다.

"전통미술이 눈에 보이는 현상을 작품으로 재현하는 것이었다면, 20세기 현대미술은 현실 너머의 정신세계를 추상적으로 구현하는 경향이 짙어요. 작가 특유의 내면을 표현한 다양한 추상화들의 풍경을 언어로 독해하려고 하지 말고 즐기면 됩니다."

현대 미술의 몇가지 특징을 알면 더 재미있다고 했다. 우선 20세기 미술사를 풍미한 사조는 '형식주의'였다. 형태와 구성, 색채가 미적 가치의 절대기준이었고 작품을 둘러싼 맥락은 평가에서 제외됐다. 이런 흐름은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신(新)미술사'에 의해 도전을 받는다.

신미술사는 미술 작품도 사회.역사적 현상 중의 하나로 보면서 작품에 내포된 맥락을 중시한다. 과학기술.건축.환경 등과 미술의 만남이 꾸준히 시도되는 것도 현대미술의 주요 특징이다.

윤 교수는 형식주의와 신미술사 사이의 중도를 걷고 싶어한다. 한편에선 작품이 탄생하고 소화되는 맥락만을 중시하며 작가의 창조성을 배제하고, 또 다른 한편에선 맥락은 보지 않고 겉모습만 보는 양 극단의 가운데에서 장점만을 수용하자는 것이다. 그럴 때 진정으로 '좋은 작품'에 대한 안목이 생긴다고 했다.

그의 책은 현대미술사의 주요 특징을 개괄하면서 브루스 나우만, 레베카 호른 등 서양 현대미술가 18명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개정증보판은 데미언 허스트, 마리코 모리 등 초판에 없던 작가를 새로 추가했고 전반적으로 글을 다듬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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