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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96> EBS 수능 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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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BS 인터넷 수능방송을 일주일여 앞둔 2004년 3월 23일 대전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학내망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7년 8월 25일 EBS의 ‘위성교육방송’이 실시됐다. 교육부가 마련한 ‘과열 과외 완화 및 과외비 경감 대책’의 하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전부터 EBS 수능 과외방송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어느 날 설렁탕에 깍두기를 곁들인 청와대 주례오찬 중에 그가 말했다.

 “수능 과외방송, 그걸 꼭 했으면 좋겠어요. 잘 좀 해보세요.”

 “네, 염려 마십시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위성방송 개국을 넉 달 앞둔 1997년 4월 총리 공관에서 안병영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관계자들을 불러 간담회를 했다. 수능시험을 관장하는 국립교육평가원(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간부들과 전년도 수능 출제위원, 고교 교사들도 있었다. 회의 도중 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이 수능 과외방송이 실제로 효과를 보려면 방송 내용이 수능시험에 꼭 출제돼야 하는 거 아니오? 방송 내용 중에서 수능시험을 60% 이상 출제하는 게 어때요?”

 마침 수능시험을 관장하는 김정길 국립교육평가원장도 참석 중이었다. 참석자들은 “수능시험의 60%는 EBS 수능 과외방송에서 출제한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 EBS 수능 과외교재는 2년 동안 불티가 났다. EBS 위성교육방송이 개국한 1997년 8월 25일 김영삼 대통령은 축하메시지를 영상으로 띄웠다. 나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 한국교육개발원에 가서 축사를 했다. 재원 마련을 위해 9월 1일부터는 광고방송도 했다.

 위성방송 개시 전에 일종의 권한 다툼도 있었다. 위성방송 관계장관회의를 하면 위성방송이 교육부 소관이냐 정보통신부 소관이냐를 놓고 부처끼리 많이 싸웠다. 광고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도 갈등이 심했다. 4월 25일 총리 주재 오찬 간담회에서 업무 조정을 했다.

 7년 뒤인 2004년 노무현정부도 부동산과 함께 사교육비 문제를 민생과 관련한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 설정했다. 2004년 2월 17일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또다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EBS 인터넷 수능 강의였다. 교육부의 수장은 7년 전과 똑같이 안병영 장관이었다. 서삼영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장, 박경재 교육부 국장과 EBS의 고석만 사장, 배종대 국장이 적극 참여했다.

 인터넷 수능 강의의 취지는 인터넷 접속이 되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든 수능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강의에 인기 강사들을 출연시키기로 했다. 단기간에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쉽지 않았다. 3월 11일 정통부·EBS·한국전산원·KT·두루넷 등 11개 유관기관 전문가로 구성된 대책반을 만들었다. 예상되는 문제들을 함께 점검해 나갔다.

 그런데 서버 다운을 막으려면 최소 10만 회선을 확보해야 했다.

 교육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의 손을 빌려야 했다.

 “진 장관, 당신이 책임지고 10만 회선을 확보하세요. 4월 1일 강의 시작 전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시오.”

 우격다짐으로 진 장관을 몰아세웠다. 진 장관이 미국에 급히 연락해 들여온 CDN(Contents Delivery Network) 서버가 인천공항을 통과한 것은 3월 30일 새벽이었다. 덕분에 이틀 후 인터넷 강의가 시작됐을 때 접속 폭주했지만 서버에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사교육비 부담이 국민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었고 EBS 위성방송과 인터넷 강의는 ‘국가대표 수능과외’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해 7월 9일 EBS 회원 100만 명 시대가 열렸다.

 공교육을 책임지는 정부가 수능과외 공부에 앞장을 섰다. 수능과외는 정부가 성공시킨 유일한 사교육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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