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 없이 킬리만자로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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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두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 정상을 정복했다.

호주의 산악인 워런 맥도널드(37)가 눈물겨운 인간승리의 주인공. 맥도널드는 지난달 24일 탄자니아를 출발, 약 2주에 걸친 사투 끝에 지난 10일 5천8백95m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미국에서 특수 제작한 의족을 끼고 한발짝 한발짝 움직이는 힘겨운 도전이었지만 당초 예상했던 3주를 1주나 앞당긴 기록이다.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는 탄자니아 농부 하미시 루곤다(20)도 같이 등반했다.

호주 남부 항구도시 멜버른 출신으로 등반 훈련학교 교사로 일했던 맥도널드는 1997년 호주 동부 퀸즐랜드주에 있는 힌친브루크산을 오르다 대형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무게 1t의 바위에 깔려 이틀 동안이나 짓눌려 있는 바람에 다리와 골반이 완전히 으깨지고 만 것이다. 몇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두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절망적인 사고도 맥도널드의 산에 대한 열정을 꺾진 못했다. 그는 사고 후 10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개조된 휠체어를 타고 호주 남부 태즈메이니아 섬의 크래들산을 오르는 불굴의 투지를 보였다. 곧이어 태즈메이니아 남서부의 페더레이션 봉 등반에도 성공했다.

미국의 ABC방송은 지난해 맥도널드의 페더레이션 등반을 '두번째 발자국'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엮어 방영했다.

그 뒤에도 특수 제작된 의족을 이용해 8일 동안 네팔 산악지대를 오르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에 끝없이 도전하는 그를 '산에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다.

맥도널드는 킬리만자로 등반에 성공한 뒤 위성전화를 통해 "오늘이 하미시와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감격해 하면서 "이번 쾌거가 장애인뿐 아니라 정상인들이 꿈을 이루는 데 용기를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맥도널드는 킬리만자로에서 돌아오는대로 캐나다 빙벽 등반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킬리만자로 등반 경험을 책으로도 펴낼 예정이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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