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벨이 울리면 의사의 가슴은 콩닥거린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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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벨이 울리면 의사의 가슴은 콩닥거린다.

의사들은 밤중에 병원에서 오는 전화를 받는 수가 많다. 대학병원 의사라 해서 예외가 없다.
특히 언제 어느 장소에 있더라도 병원에서 응급전화가 오면 즉시 처치할 수 있도록 대기해야 하는 대기 의시(on call doctor)가 되면 밤마다 긴장 상태에서 지내야 한다. 대기 기간은 병원에 따라 한달에 1주가 될 수도 있고 한달이 될 수도 있다. 의사 수가 많으면 대기되는 간격이 길고 수가 적으면 간격이 찗아 진다. 필자가 젊었을 때는 거의 매일이 대기여서 밤중에 자다가 전화를 받는 일이 너무 잦아 항상 잠이 모자랐다. 어둠 속에 벨이 울리면 "에이.. 오늘도 자기는 틀렸구나..." 하면서 밤중에 병원으로 달려가곤 했다. 응급수술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갑상선암 수술 전문을 하고 나서부터는 밤중에 불려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
갑상선 수술이야 사전에 진단하고 수술범위를 정하고 하는 계획된 수술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갑상선 수술은 수술이 만족스럽게 끝났을 때 " 이 환자는 괜찮을 거야"라고 하면 정말 회복이 순조롭다. 암이 많이 진행된 일부의 대수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이렇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하게 수술이 끝난 환자라도 회복과정 중에 말썽을 부리는 수가 가끔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갑상선 수술후에 생길 수 있는 수술합병증 때문이다.
아무리 수술 노하우가 많은 수술15단 노련한 갑상선 외과의사라 해도 수술후에 극히 일부이지만 수술합병증이 생긴다.

소위 갑상선 수술의 3대 합병증이라는 것이 있지...... ..의과대학 학생 시험 문제로 잘 나올 정도로 갑상선수술에서 강조되고 강조되는 문제다.
3대 합병증이란 (1) 저칼슘 혈증, (2) 목소리 변화, (3) 수술부위 출혈 이다.
이런 합병증만 없으면 갑상선 수술은 천국의 수술이다. 수술이 완벽하게 잘 되었다고 해도 이런 합병증이 생기니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합병증이 생기면 환자고통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집도의사의 마음고생도 이루 말할 수 없다.
필자는 이런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정말로 답답할 정도로 수술을 종료할 때 체크하고 또 체크하곤 한다. 특히 출혈점 체크에서 더 그렇다. 그것도 못 미더워서 마취에서 깨어나면 회복실에서 또 체크한다.

우선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날 때 용을 써서 수술부위가 터졌나 실핏줄이 터졌나 점검한다. 아주 아주 드물지만 마취회복 중에 환자가 소리지르고 힘을 쓰는 바람에 수술부위 핏줄이 터져서 다시 수술실로 가야하는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아~~, 목소리 내어 보세요" 해서 성대신경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한다. 그리고 병실 저녁회진 때도 또 점검한다.

필자는 돼지를 실험동물로 해서 내시경 갑상선 수술을 연마한 적이 있다.
근데 돼지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목의 기도 전면에 갑상선이 위치하고 있는데, 성대 신경과 부갑상선은 사람과는 달리 갑상선과는 아주 멀리 목의 다른 부위에 자리잡고 있어 돼지 갑상선수술 때는 걱정할 게 없다.

사람은 성대신경과 부갑상선이 갑상선과 붙어 있고 혈액 순환도 갑상선 혈액에 기생해서 기능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으니 갑상선외과의사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기라.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갑상선을 돼지처럼 만들어 놓았으면 오늘날 이 고민은 없을 텐데 말이지.....(조물주의 깊은 뜻을 한낱 미물인 필자가 어떻게 알겠노)

갑상선 수술후에 가장 많이 생기는 수술합병증은 수술후 저칼시움 혈증으로 인한 손발저림이다. 이는 갑상선을 떼고 나면 부갑상선으로 사는 혈액수환이 잘 안되어 부갑상선기능이 떨어져서 오는 현상이다. 대부분은 일시적(1~50%)이라 혈액 순환이 좋아지면 늦어도 1년 전후에 호전된다. 그러나 때로는 좋아지지 않는 영구적 기능저하로 가는 수도 있다(0~13%).

필자는 일시적이라도 안생기게 하려고 부단의 노력을 한다. 0%가 되면 가장 좋겠지만 거의 불가능이라 일시적이라도 10% 이하가 되도록 노력한다. 이 정도가 되면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라 의사들 사이에서는 말하곤 한다. 뭐야 0%가 되어 야지....그러나 이는 어렵다. 일본이나 미국의 일부 병원에서는 갑상선전절제 수술 받은 환자에게는 아예 비타민-D와 칼시움을 퇴원할 때 처방하기도 한다.

림프절 전이를 철저히 제거하면 쌀알같이 작은 부갑상선으로 가는 미세혈액순환이 나빠지게 되어 있어 그런거라....에휴..

수술후 목소리 변화는 암의 침범이나 유착으로 성대신경이 절제되지 않았으면 언젠가는 대부분 돌아오게 되어 있다. 돌아올 때까지 환자와 의사는 불편하게 산다.
근데 세번째 합병증인 수술부위 출혈 문제다.

갑상선은 우리 인체에서 혈액이 많이 들어오고 많아 나가는 장기로 유명하다. 무수히 많은 동맥 정맥이 서로 얽혀 있는기라.

그래서 수술할 때 철저한 지혈이 다른 어떤 수술보다 중요하다. 필자는 지혈 작업을 할 때는 그냥 단순 결찰을 피하고 중요한 출혈점은 꼭 봉합결찰(suture ligature)을 한다. 단순 결찰을 하면 환자가 기침할 때나 힘을 쓸때 결찰이 풀어져 출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했는데도 1년에 한두번은 출혈 환자를 보게 된다. 등골이 오싹해 지지.........

출혈부위가 갑상선 전면에 있는 띠근육보다 깊은 곳이면 이는 응급이다. 즉시 처치하지 않으면 기도가 눌러져서 호흡곤란으로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수술실까지 갈 여유도 없다. 병실 베드에서라도 수술부위를 열고 눌린 기도를 풀어줘야 한다.

보통은 수술 끝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부위가 부풀어 오르고 호흡곤란을 호소하기 때문에 쉽게 발견된다. 그리고 제대로 처치되면 회복에 문제는 없다.

지난 월요일, 그날 수술은 암이 좌측 성대신경, 기도, 식도를 침범해서 수술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혈하는데 애를 먹은 환자 한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술이 기분 좋게 끝났다. 저녁회진 때도 모든 환자가 별 이상이 없어 걱정없이 집에 와서 컴터 자판질 하다가 11시경 잠자리에 들었는데 난데 없이 "어둠 속에서 벨이 울린다" . 필자의 심장 박동이 막 뛰는기라.
아이쿠 이 시간에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내 환자에게 무슨 일이 터진 건데...........
"뭐야? 그 환자 한테 문제 생겼어?" 틀림없이 암이 심하게 퍼진 그 환자일거야 하면서 당직의사를 다그친다.
"그 환자는 아니고요. 30대의 다른 환자인데 수술부위가 부어 올라 연락 드립니다"
"호흡은?" "호흡곤란은 없는데요. 근데 목 피부에 멍이든 것(ecchymosis)이 보입니다"
아, 그러면 안심이다, 초응급은 아니다. 출혈부위가 피부아래층 피하부위이니까 멍이 피부에 보이는거다.

띠근육(strap muscles) 아래 기도주위 출혈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호흡문제가 안 생긴거다.
밤중이지만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니 역시 피하 출혈이다. 몸을 움직이다가 작고 약한 실핏줄 하나가 터진 것이다. 간단히 지혈하고 다시 병실로 고고씽....휴~~~~

다음날 아침 환자와 가족에게 놀랬겠다고 위로의 말과 함께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어쨌든 환자가 놀래고 고생하지 않았는가.

환자의 놀랜 가슴이 진정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수술자체의 회복은 순조롭다.
필자에게 일년에 한번 생길까 말까 한일이 이 환자에게 생긴 것이다.

어둠속에 벨이 울리면 의사도 놀랜 가슴으로 심장이 콩닥거리게 되어 있다.
이러니까 외과 의사의 평균수명이 다른과 의사보다 10년정도 짧아진다고 했던가.

이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아무리 아무리 철저히 해도 앞으로도 절대로 생기지 말란 보장은 없으니 우짜면 좋을지.......에휴....에휴....


☞박정수 교수는...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 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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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교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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