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중심사회] 5. 전략적 국가연구개발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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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0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어느 사회 부문보다 더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이 1백여년에 걸쳐 이룩한 것에는 못 미치지만 그 뒤를 바짝 쫓아갈 정도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제 도약을 위해서는 국민총생산(GNP) 2만달러 시대를 목표로 각종 정책과 인프라.전략을 마련할 때가 됐다.

GNP를 10년 동안 2배 이상 늘리려면 매년 7%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해야 가능하다.

이는 반도체.디스플레이.컴퓨터.개인통신기기.자동차.조선.철강.중화학 등 현재 수출을 주도하는 산업의 시장을 확대하지 않고는 어렵다.

흔히 '선택과 집중'이라는 개념으로 제안되는 틈새산업의 육성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1백조원 매출을 올리는 제품이 있다면 그 시장을 10%만 확대해도 10조원의 추가적인 매출이 생긴다.

그러나 틈새 제품으로 이 만큼의 신규 시장을 창출하려면 획기적인 제품이거나 뼈를 깎는 노력이 없고서는 그렇게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연간 10조~1백조원 규모의 산업을 다수 가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수년 동안 세계적으로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도 플러스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잘 해 왔다.

기존산업과 성장산업의 지속적인 매출신장을 위해서는 기술향상을 통한 경쟁력의 우위 확보가 관건이다. 여기에는 생산기술 뿐만 아니라 설계.소재 등 기반기술이 따라줘야 한다.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은 거의 모든 주력산업이 선진국과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산업구조가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선진국에 치이고, 중국.말레이시아 등 후발국의 추격에 시달리는 고단한 형태다.

앞으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주축은 현 주도산업의 요소기술의 첨단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산업 생산과 시장개척은 산업체의 몫이다.

그럼에도 산업활동을 지지하는 핵심 요소기술을 확보하는 데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쟁 대상국들이 최소 50여년 이상 기반기술을 육성해온 것을 우리 산업체가 단기간에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먹거리 산업이 21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기반기술 수준을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그래야 선.후진국을 따돌릴 수 있다.

구체적인 정책 수단으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자원을 중소기업형 핵심기술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민간의 기술개발 투자가 이 방향에 집중되도록 정책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국제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미래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는 필수다. 기술은 정보통신기술(IT).생명공학(BT).나노기술(NT) 등으로 지칭되는 새로운 기술시대로 급속하게 전환되고 있다.

21세기에는 이런 기술들이 개별 혹은 서로 융합하며 신산업을 만들어간다. 이는 미래 기술의 큰 흐름이기도 하다.

미래 기술 개발은 정부가 선도해야 할 몫이다. 국가연구개발 예산의 일정 부분을 이들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전략적으로 할당해야 한다. 할당 비율은 산ㆍ학ㆍ연ㆍ관의 대체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초기에는 10~20% 정도로 시작, 점진적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

연구의 주체는 공공연구기관과 학계의 역량을 우선적으로 결집시켜야 한다. 그 뒤 산업계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전략이 적절하다. 초기 연구 흐름을 잡는데는 산업계의 역할이 긴요하다.

나중에 어떤 것이 돈이 될지 산업계가 잘 알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주제와 내용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현재와 가까운 장래에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끌 주도 산업에 피드백 될 분야와 주제를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선진국에 비하여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추진 목표는 갓 태동하는 기술의 선행연구에 둬야 한다. 그래야 산.학계가 이어서 본격적으로 연구개발에 나설 때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이 이런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새로운 기술을 경쟁국에 앞서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금동화 KIST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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