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령 무형문화재 25호|40년 만의 「민속」재연 나무쇠 싸움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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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낙동강 연안에 유일하게 전해오는 고유민속의 편싸움「나무쇠 싸움놀이」(목우전)가 지난1일 경남 창령군 영산에서 실연됐다. 지난해 무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된 이 민속놀이는 40여년만에 재생. 이곳 3·1문화제의 개막행사로 베풀어진 것이다.

<두패로 갈라타고>
온마을을 동서 두패로 갈라 각기 목우를 타고 힘을 겨루는 이 놀이는 불과 10여분만에 서부의 나무쇠가 거꾸러짐으로써 이날의 승리를 동부가 차지했다.
동부사람들은 그들이 추대한 대장들을 소등에 태우고 향토제가 열린 4일 동안 계속 마을길을 누비고 다니며 개선의 함성과 위세를 떨쳐 축제의 분위기를 돋우었다.

<동채 싸움과 비슷>
나무쇠 싸움은 안동의「동채싸움」과 비슷하여 황소가 머리를 마주 비비며 싸우는 것을 흉내낸 차전놀이의 일종. 3, 4미터의 굵은 생나무 토막 20여개로 간대를 매어 굉장히 육중한수레이다.
이 위에 대장 3명, 전령역할 하는 집사 1명, 졸병 10여명이 타고 이를 수십명의 청년이 둘러메고 부딪는데 결코 물러설 줄 몰랐다. 상대방의 수레를 누르거나 거꾸러 뜨리는 것으로승부를 가리는 거샌 경기이다. 무수한 깃발과 귀를 찢는 풍물소리 그리고 마을 남녀노소의함성에 얽혀 그야말로 일대장관올 이뤘다.
단 한사람의 기능 보유자 남정국씨(61·영산면 성내리)는 10세 안팎의 어릴 때 그걸 구경했을 뿐이라고 한다. 음력 정월 보름 무렵 해마다 했다고 회상한다. 음력2월 환절기에 바람이 거세면「바람 올리는」부락제로도 행했다고 한다.

<우마제사서 비롯>
영산은 본래 현이 있던 원 터. 터가 세어서 우마를 잡아 피를 뿌리는 제사에서 비롯했다고 이곳 사람들은 말한다. 이전설 이외에 어떠한 재사가 있었는지 그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싸움놀이가 어떻게 해야 더 재미있고 묘미가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일식군복 아리숭>
그들의 대장에게 입힌 군복이 하필 일식이냐는 점에 대해서도 고증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은 구한국 말의 군복을 입고있던 어릴적 기억을 되살렸을 따름일 것이다.
지금 면소재지에 불과한 시골 소도시 영산의 향토제는 4일밤 줄다리기(무형문화재 26호 지정)로서 그 절정을 장식하고 막을 내렸다. 길이 50여 미터에 한아름이 넘는 암수 2줄을 옮겨다 잇는 집잡이 놀이가 무려 5시간. 할머니들따지 함빡나와 곁줄을 잡고 자기마을이 이기자고『이영차 이영차…』안간힘을 썼다.

<이긴 곁출 지붕에>
승부가 끝나자 이긴편의 결줄은 삽시간에 없어졌다. 그걸 한토막씩 끊어다가 지붕에 얹어야 1년내내 재수있다는 것이요, 그동아줄을 썰어 소먹이면 살진다는 신앙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의 이같은 민속행사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대단한 편. 나무쇠싸움과 줄다리기를 한해씩 걸러 한 것도 오랜 기억인데 이제 다시 온마을 사람이 이부락제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2천년전 호전적인 기마민족이 군거했던 이곳 비사벌 땅은 역시 가락국의 부족사회 때부터 형성된 마을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의 투지는 지금 딴지방에서 볼수없는것이며 그것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창령=이종석·구태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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