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의 장기 차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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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각의는 20일 물자차관도입의 길을 열기 위해 외자도입법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한다.
수입 수요의 격증과 외자 원리금 상환 압력의 가중으로 외환면에서의 압박이 차츰 현저해짐에 따라서 취해지는 물자차관·현금차관·외채발행 등 일련의 구상은 하나의 응급책으로 어쩌면 불가피 한일인지도 모른다.
수입 수요가 올해는 17억달러 수준으로 늘 것이 거의 틀림없으며 수출 목표 7억달러와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 또 차관도입 규모도 이제 인가분까지 합치면 20억「달러」 수준을 넘기고 있는 것이며 그중 상품 차관이 15억달러나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상품차관의 경우 동일액을 연차적으로 도입한다면 7년후에는 신규 도입액과 원리금 상환 부담은 맞먹게 되는 것이므로 외자의 순유입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상업 차관 위주의 외자도입정책이 성공하려면 차관도입이 본격화 된후 7년 이내에 국제수지의 개선 전망이 확실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 기간 안에 국제수지 개선의 계기를 열지 못하면 결국 부채 상환을 위한 부채 과증 과정에 접어들기 쉽다는 것이 이론이 제시하는 「모델」이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물자차관을 추진하지 않으면 아니된 현실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차관을 본격적으로 추진한지도 벌써 7년이 되는 것이며, 이제 어느 정도 국제수지 개선에 대한 전망이 서야 할 단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실정은 오히려 국제수지 압박의 가중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된 실정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차관 정책이 작금과 같이 국제수지면에 압박을 주게된 근본 원인을 이제는 세밀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이제부터라도 개선을 위한 기본 대책을 마련해야 할 줄로 안다.
우선 차관 정책의 효과면을 무시한 산업건설 정책을 시정해야 할 것이다. 반소비재 또는 사실상의 완전 소비재를 들여다 국산 상표를 붙여 국산으로 분장하는 따위의 공장이 우후죽순격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오늘날 원자재 수입 수요를 그토록 증대시킨 것이다. 이른바 수입 편의적 성장이 이토록 이룩된 배경에는 결국 그동안의 차관 산업 건설의 모순이 내재되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경제의 비가역성을 고려한다면 이제 원자재 수입 억제는 생산 감퇴로 반영되는 것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딜레머에 빠진 것이다.
다음으로 고율 차관 고가 투자 정책을 계속 집행하는 한, 원리금 상환 부담은 계속 늘어나지 않을 수 없음뿐만 아니라 수입 감소의 계속적인 사태도 불가피 하다. 따라서 차기 잔고 누증과 수입 감소의 확대를 수반하는 고도 성장 정책을 그대로 놓아두고서 국제수지 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라 할 것이다. 사리가 이와 같다면 물자차관 현금차관과 같은 단기 부채로 국제수지 압력을 완화시키려 하는 것은 너무나 근시적인 생각이마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채 압력의 철회를 위해서는 단기채를 장기채로 전화시키는 것이 순리인데 우리는 거꾸로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제환경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환경이 악화되어 그런 조작이 불가능하다면 국내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순리이다. 어느쪽도 선택하지 않고서 고도 성장 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갈 때 날이 갈수록 국제수지 압력은 가중될 것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물자차관까지 구사하면서 고도 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자신과 박력에는 감탄하는 바이나 그것이 맹목적으로 흘러 보다 큰 낭비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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