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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총장은 기업가일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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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2월1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진성기박사의「사대특감유감」을 읽고 느낀바가 있어 필자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것을 몇자 적어 비판을 받고자한다.
진박사는 오늘날 한국대학이 걸어온 난맥상을 정확히 지적했고 그 결과의 하나로 나타난정원외 학생에대한 졸업장 부여문제에 관해서도 그책임의 소재를 밝히고 또 건설적인 의견을 발표했다. 이점에대해서는 필자로서도 다른 의견은 엾다. 그러나 필자가 문제삼고자하는 것은 그의글의 핵심적 부분에있다.
즉 진박사는 대학의 총장은 반드시 교육자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대학총장은『자기가 교육자라는 환상적「이미지」에서 자기자신을 해방시키고 자기는 자타가 인정하는 유능한 학원경영자요, 학교행정가라는데 오히려 긍지와 보람을 가지라』고 충고한다. 그것이 그분들을 위해서나 대학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 아닐까』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와같은 견해를 갖는 사람은 비단 진박사에한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식자중에는 그와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또 대학을 경영하는 이사진이나 심지어 문교정책을 맡아보는위정자중에도 그러한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이 적지않은 줄 안다. 위험천만한 사상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학이 빚어낸 난맥상은 바로 이와같은 견해의 소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학의 난맥상은 대학총장이 교육자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탓이 아니라 총장은 교육자로서의 경륜도 없고 학자로서의 식견도 없어도 유능한 행정가요 기업적 경영자면 족하다고하는 환상이야말로알맹이없고 교시조차 분명치않은 대학을, 그리고 이상도 세계관도 없는 대학생을 만들어 낸 근본원인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외국의 예를 잘들고 나온다. 진박사도「컬럼비아」대학에서 군인출신인「아이젠하워」가 총장이 되었던 실례를 들고 있다. 미국에는 교육자도 학자도 아닌 유능한 경영자가 대학의 총장이 된 예는 이밖에도 적지않다.
그렇다고하여 그 점만이 우리의 대학운영의「모델」이 될 수는 없다. 미국의 대학에는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회라는 조직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교수회는 그대학의 교육이념과 학생의 지도방침을 심의결정하는 강력한 기능을 발휘한다. 이와같은 교수회의 조직체가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으로해서 대학의 총장은 이사회 및 동창회와 협력하여 대학의 발전을 위한 대외활동을 효과적으로 다할 수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우리나라에서는 국립·사립대학을 막론하고 교수회가 제구실을 하는 대학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교수회는 대학행정에대해 심의기관도 아니고 자문기관도 아니고 결의 기관도 더욱 아니다. 교수들은 자기의 대학에 어떤 학과가 신설되는지, 어떤 교수가 들어오는지, 어느 교수가 무슨 이유로 파면되는 지 알지 못하고 있다. 어제까지 자기의 지도를받던 학생이 졸지에 퇴학당해도 그이유조차 모르고 있다. 근래에 대학마다 학생정원을 늘리기위해서 해괴망측한 학과가 많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교수들이 이에 관여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교수들은 그대학이 재정적으로 풍부한지 궁핍한지는 더욱 알지못한다. 총장은 실로 대학의 재정책임자요 교육정책의 유일한 담당자가 되고 있다. 이러한 조직하에서 총장이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는 실로 대학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순간인 것이다.
해방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대학이 설립되었어도 교시조차 뚜렷하지 못한 대학이 많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좌왕우왕하는 대학의 예를 수없이 보아왔다. 이것은 대학총장이 대학이념에대한 높은 이상도 없고 역사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식견도 없이 다만 기업가적 정신하나만으로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여온 결과라고 하지 앉을수없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요, 새로운 세대를 창조해내는 도장이며 대학총장은 바로 이러한 사명을 가진 교육의 총책임자인 것이다. 대학총장에게 기업가적 정신이나 기업가적 경영능력이란 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대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 필자는 다음의 한두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로, 대학의 재정경리와 교육행정은 분리시켜야 한다. 대학의 재정은 이사장을 비롯한이사진이 맡고 총장은 교육행정에 전념하여야 할 것이다.
이사진 은기업가적 경영능력과 열의가 있는 사람이 이에당하며 교육행정에는 관여하지 말아야한다.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에서는 이사진이 교육행정에 지나치게 관여함으로써 대학발전을 저해한 실례가 많았음은 우리는 잘알고 있다.
둘째로, 대학의 교수회는 그본래의 기능을 되찾아야한다. 대학의 전통은 교수와 학생에 의해서 창조되고 이어나가는 것이다. 총장은 교수들의 의견을 올바로 받아들일 수 있고 교수회를 이끌어 나아갈 수 있는 높은 식견에 기초를 둔 행정력을 가진사람이 그직책를 맡아야할 것이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학문을 하는 고장이다. 학문적인 바탕에서 나온 권위를 갖지않고는 교수회를 능률적으로 인도할 수 있는 총장이 될 수는 없다.
끝으로, 행정부는 교육정책에 어굿나지 않는 한 각대학의 개성을 살려 나아가도록 하여야할 것이다. 모든 대학을 개성을 말살하고 평준화시키는 것은 대학을 올바로 육성하는 길이되지 못한다고 믿는다.<고대교수> 조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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