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고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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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국의 극작가「노얼·카워드」는 유명한 일화 한가지를 남겨 놓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런던」의 고관 20명에게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서 속달 우편으로 보냈다.
『모조리 폭로되었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뛰어라.』―다음날 20명 전부가 「런던」을 빠져 도망가더라는 얘기다. 세상엔 허물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퍽 긍정적인 사람들의 「에피소드」이다.
요즘 관가를 휩쓸고 있는 부패 공무원 단속령은 「시니컬」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부패 사건을 마땅히 「결재」했을 입장의 상급 공무원은 용케도 제외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하급공무원들의 구속으로 떠들썩하다.
관기를 맑게 만든 위정자로는 「필리핀」 대통령 고 「막사이사이」 박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는 그 날로, 자신의 전 재산을 공개했었다. 그를 두고 당시 「저널리즘」들이 『교회의 쥐』라고 불렀던 것은 기억이 새롭다. 『교회의 쥐』만큼이나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막사이사이」는 이사관급 이상의 공무원에겐 의무적으로 재산을 공개하게 했으며, 퇴임 후에도 상당 기간을 두고 그 당사자의 재산 조사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국방 장관의 재직시에 「버스」를 타고 출장을 다니던 일, 그 「버스」가 고장이 날 때면 너부죽이 허리를 굽혀 고장난 「버스」를 밀어 발동을 걸게 한 일은 흔히 그 나라 신문의 사진에서 보던 모습이다.
「버스」를 타는 장관에게 누가 감히 능률 행정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능률 향상보다도 더 시급하고 절실했던 것은 그 나라 관기의 확립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 집계에 의하면 서울 시경의 경찰관 8천명 중에서 징계를 받은 사람은 7백 10여명이나 되었다. 「경고 조치」의 경우까지 합치면 무려 33.4%의 경찰관이 부패 사건에 관련되었다. 이것은 바로 공무원의, 더구나 법을 일선에서 집행하는 공무원의 관기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수선스러운 관기 확립이 말하자면 「런던」의 고급 관리들이 도망치듯 빠져 달아나는 단속이어서는 유명 무실의 효과밖엔 없다. 부패의 분위기를 방관하는 바로 그 「분위기」 자체가 어떤 부패보다도 무서운 관기의 파괴일 수가 있는 것이다. 관기는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맑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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