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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김 사장'이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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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기선민
중앙SUNDAY 기자

요새 출판동네 얘깃거리 중 하나가 ‘마포 김 사장’이다. 30대 후반인 김 사장은 서울 망원동에서 ‘북스피어’라는 출판사를 운영한다. 8년 된 북스피어는 작품당 1000부를 팔면 잘 팔았단 얘길 듣는, 소위 장르문학 전문이다. 대형 출판사도, 유명 출판사도 아닌 북스피어와 김 사장이 이 동네에서 회자되는 이유는 나름의 독특한 생존법 때문이다. 김 사장의 생존법은 베스트셀러에만 심하게 쏠리는 독서 풍토와 사재기·덤핑판매 등으로 시끄러운 출판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아 여기에 소개하려 한다.

 김 사장의 발상은 좀 엉뚱하다. 신간을 내는 데 드는 비용을 독자들로부터 투자받아 충당한다는 것이다. 요새 문화계에서 종종 있는 ‘크라우드 펀딩(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인 셈이다. 김 사장 스스로도 ‘과연 누가 낼까’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독자들이 돈을 내는 신기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지난해의 일이다. 『화차』 『모방범』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안주』를 내면서 그는 독자들에게 1계좌당 10만원씩 내달라고 요청했다. 순식간에 5000만원이 모였다. 책은 1만 부 넘게 팔렸고 그는 독자들이 낸 돈을 모두 돌려줬다.

 1년여 만인 이달 초 김 사장은 미야베 미유키의 『그림자 밟기』를 내면서 펀딩에 재도전했다. 1억원을 목표액으로 잡았다. 모집 보름 만인 19일 현재 3000만원 넘게 모였다. 이번엔 단순하게나마 펀드의 꼴을 갖췄다. 1만5000부 이상 팔리면 원금이 보전되고 3만 부가 넘으면 수익이 발생한다.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목표액이 채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목표액이 채워져도 원금이 까이지 않을지는 미지수다. 그런데도 그는 왜 이런 별난 일을 굳이 벌일까. 북스피어 블로그에 오른 독자 댓글을 보면 알 것도 같다. 빠듯한 생활비를 쪼갠 주부, 아내 몰래 모은 비상금을 턴 회사원 등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위해 쌈짓돈을 투자한다는 ‘개미 독자’들의 뜨거운 응원이 그것이다. “(사재기나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등) 바람직하지 않은 도서 마케팅의 유혹에 손쉽게 노출되는 지금, 출판사와 독자가 서로 격려해 가며 책을 팔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블로그에 올린 김 사장의 바람은 어느 정도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문화 콘텐트 분야에 한정 짓는다면 시장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하고 교감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다. 김 사장의 사례는 이런 소통을 통해 하나의 ‘취향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취향공동체가 많아질수록 베스트셀러가 독서 시장을 온통 장악하는 현상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얼마 전 또다시 사재기 파문이 일었다. 처벌 조항을 과태료가 아닌 벌금형으로 바꾸고 벌금 액수를 올리는 현실적 보완도 시급하지만, 이런 시도가 병행된다면 한국 출판시장의 체질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은 건강해지지 않을까 싶다.

기선민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