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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받을 만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용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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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사회부문 기자

진료비정액제(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정부와 산부인과 의사들의 갈등이 해결됐다. 수술을 거부하겠다던 산부인과 의사들이 이를 철회해 환자들이 불편을 겪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대한산부인과의학회는 18일 오전 가톨릭대 의과학연구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선행(고려대 의대 교수) 회장은 “한 발짝 물러서서 여유를 갖고 정부와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반대해오던 포괄수가제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김 회장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학회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도출할 것을 정부와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산부인과 의사들은 포괄수가제를 강하게 반대해왔다. 이들은 “자궁과 그 부속물 수술은 증상이나 난이도가 크게 차이 나는데 하나로 묶으면 의료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중증 환자를 기피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철회하지 않으면 다음 달 1일부터 복강경 수술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기법은 자궁 관련 수술의 60%를 차지한다.

 이를 보는 국민의 시선이 편할 리 없었다. 지난해 동네의원부터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려 했을 때 대한의사협회가 벌인 극한투쟁이 떠올라서다. 그래서 이번 산부인과 의사들의 행동을 보고 “또 수술 거부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려는 맹장·백내장 등의 수술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워 하나의 수술로 정액화하는 게 맞지 않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안 그래도 출산율 저하 때문에 사정이 어려운 산부인과 의사들이 더 힘들어지면 안 된다는 동정론도 작용했다.

 문제는 수술 거부라는 극단적 항의 방법이었다. 의사들의 행태가 국민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정부도 의사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고 의사들도 극단적 방법을 접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의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와 타협을 계속했다. 정부는 제도 시행을, 의사들은 ‘일부 수술 수가 인상, 1년 뒤 보완’이라는 소득을 챙겼다. 만약 타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부는 비현실적인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비난을, 의사들은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환자를 볼모로 잡았다는 혹독한 비판에 휩싸였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은 흔치 않다. 집단 이기주의와 명분 싸움에 발목이 잡혀 갈등을 키우기 일쑤다. 이번 타협은 정부와 산부인과 의사 모두의 승리임에 틀림없다. 특히 수술 거부를 철회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용단(勇斷)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

장주영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