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전용기서 박 대통령에게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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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17일(한국시간) 오전 11시 에어포스원(미국 대통령 전용기). G8 정상회의차 북아일랜드로 향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비서에게서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미국 대통령의 ‘날아다니는 집무실’로 불리는 에어포스원은 통신시스템을 잘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기내에 80여 대의 전화가 있으며, 다양한 주파수로 세계 곳곳과 공중 대 공중 통신, 공중 대 지상 통신, 위성통신이 가능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통화를 원했던 사람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예정에 없던 두 정상의 통화는 약 20분간 이어졌다.

 지난 7~8일 미·중 정상회담의 내용을 박 대통령에게 설명하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이 전격적으로 제의한 ‘북·미 고위급대화’와 관련이 있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시 북한 핵 미사일 프로그램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안보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며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중국도 적극 협력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중국의 의지를 표명하고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으로 용인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단순히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게 되면 그 사이에 북한이 핵무기를 더 고도화하는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에어포스원에서의 전화’와 관련해 외교부 관계자는 “두 가지 포석이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북한의 고위급대화 제기로 자칫 들러리가 될지 모른다고 우려할 한국에 ‘우선순위는 한국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한에는 한·미·중 공조가 확고함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다른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실무급이 아닌 정상들이 언제든 현안을 조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대외에 전달한 셈”이라고 봤다.

 미국은 일단 북한의 대화 제의에 대해 ‘행동을 보여달라’며 사실상 조건부 거절의사를 밝히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케이틀린 헤이든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다. 북한이 이런 의무를 준수할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주는 조처를 하기를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한쪽으론 대화를 제의해 놓고, 다른 쪽으론 뒤통수를 때리곤 했던 북한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워싱턴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북한은 지난해 2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과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등이 담긴 2·29 합의를 보름 만에 깨고 4월에 미사일을 발사했었다. 정부 관계자는 “최소한 북한이 영변 핵 개발 모라토리엄(유예) 조치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등 2·29 합의에 대한 ‘플러스 알파’ 조치를 선행하지 않고선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 이번엔 중국과 대화 추진=북한은 중국과도 대화 추진에 나섰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은 17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북한 핵 협상을 총괄하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19일 베이징에서 장예쑤이(張業遂) 외교부 부부장과 전략대화를 한다”고 밝혔다.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리는 이번 전략대화에선 비핵화와 북·미 대화 등 현안이 논의될 전망이라 주목된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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