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가족 외식이 교사들 회식 둔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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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앙일보가 보육교사 21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인터넷 고발사례를 분석한 결과 어린이집의 평가인증 조작·편법 유형은 매우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회계서류를 조작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이 동원됐다. 평가인증을 앞둔 서울 강북구 가정어린이집 교사 김모(40)씨의 5월 월급 통장에 평소에 없던 수당 20만원이 입금됐다. 원장은 “20만원을 현금으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교사 처우가 좋으면 평가인증 때 가점을 받기 때문에 수당을 지급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 김모(34)씨는 “원장 가족이 외식해놓고 교사들이 회식한 것으로 지출 내역을 적어 허위 영수증을 붙였다”며 “지난 4월 평가인증 때 현장확인반이 장부를 들여다봤지만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원장이 아이사랑카드(보육료 결제카드)로 가정용 장을 보고 어린이집에 쓴 것으로 조작하거나 ▶손자한테 70만~80만원짜리 장난감·책을 사주고 교재·교구비로 처리하고 ▶사돈한테 고기를 선물하고 애들한테 먹였다고 조작한 경우도 있다. 서울 강동구의 한 보육교사는 “어린이집용으로 푸짐하게 장을 봐서는 원장 가족들이 어린이집에서 자주 저녁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전문 아르바이트 고용 일지 정리

 보육교사들은 “소설가가 돼 (보육)일지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집은 보육계획을 먼저 만들고 이행 사항을 일지로 쓰게 돼 있다. 반과 아이별로 쓴다. 서울 노원구 차모(29) 교사는 “석 달 전에 어떤 아이가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지금 와서 어떻게 기억하고 세밀하게 정리할 수 있겠느냐. 그럴듯하게 지어서 쓸 수밖에 없다”며 “보육교사 중 당일 일지를 쓰는 사람이 20~30%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민간어린이집에서 일하는 교사 김모(34)씨는 “평가 잘 받으려고 겉모양을 꾸며 성형미인을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이미 인증을 통과한 어린이집에서 일지를 빌려와 베끼거나 서류 작성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서울 성북구 민간어린이집 교사 구모(31)씨는 “전문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서류 한 가지에 20만~30만원, 종류가 많을 때는 100만원 넘는 비용을 들여 평가인증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보육전문 사이트에는 자신의 교사 경력과 평가인증 노하우를 내세워 영업하는 사람도 있다. 취재팀이 연락해 보니 “아이 한 명당 대략 1만원 안팎을 받고 일지를 정리해준다”고 말했다.

점검 시기 알려주니 편법 더 성행

 평가인증 편법과 조작이 성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으로 2주 안에 현장 확인을 나간다고 미리 알려주기 때문이다. 평가도 서류 중심으로 이뤄진다. 시기가 알려지니까 집중적으로 준비하거나 편법을 동원한다. 불시에 점검하는 방식이 아니다. 정부가 평가인증을 위탁한 한국보육진흥원 조용남 국장은 “불시에 할 경우 아이들이 야외활동을 나가면 평가할 수 없고 현장확인 나간 직원 수당이 절반 깎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 국장은 “인증 후 사후에 불시 점검을 강화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사후 점검은 지난해 400곳, 올해 1000곳에 불과하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장진환 정책위원장은 “유치원처럼 보육장학관제를 도입해 평가인증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큰 어린이집은 80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평가인증 제도가 없었다면 그나마 지금 정도의 질 관리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보완대책을 제시했다.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교사들이 평소 12시간 보육하고 일지 등의 서류를 작성할 여유가 없다”며 “교사를 늘리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순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평가인증을 강화하되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보육수당 지급을 중단하는 등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이지영·고성표·장주영·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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